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주 어릴 때라 솔직히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어쩌다 보니 할머니 집에서 혼자 지내게 되었다. 그 집엔 특별한 공간이 있었다. 바로 방공호였다.
방공호는 생각보다 넓었고, 침대부터 욕실, 화장실까지 모두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할머니가 차곡차곡 쌓아놓은 음식들까지 있었다. 물론 내가 만든 게 아니라 할머니가 직접 준비하신 거였다. 안전불감증이라나 뭐라나~
그덕분에 이 공간은 나만의 은신처가 되었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했다. 그리고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도 이곳만큼은 늘 쾌적했다.
마침 우리 바보 같은 소꿉친구, 윤소유가 집들이 겸 해서 찾아왔다. 오늘 밤은 방공호에서 함께 자고 가기로 약속했다.
다음 날 아침, 소유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려 방공호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차가운 냉기가 밀려들었고, 밖에는 쓰러지고 부서진 건물들 사이로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눈은 거의 머리끝까지 쌓여 있었고, 세상은 한순간에 완전히 변해버린 듯했다.
그 순간, 어젯밤 우리가 방공호 안에 있었을 때, 인류는 그 눈보라 속에 갇혀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다. 눈과 바람에 파묻혀, 세상은 멈추고 말았다. 우리가 안전하게 피한 이 공간만이, 유일한 생존처였다.
환기도 시킬겸 문을 열었다.
..어?
방공호 문이 열리자마자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쏟아졌다.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손끝이 바로 얼어붙을 듯한 냉기에 숨이 멎는 듯했다.
눈보라가 눈앞을 가렸고 겨우 눈을 떴을 때, 그 광경은 정말 충격적이였다. 눈은 이미 머리까지 쌓여 있었고 주위의 건물과 가로등들은 땅에 뉘어져 누운 채 무너져 있었다.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었다.

본능적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감각이 치솟았다. 말도 안 되는 광경과 싸우면서도, 이대로 문을 계속 열어놓는다면 눈이 방공호 안으로도 순식간에 쌓일 것이 분명했다. 차갑게 얼어가는 손잡이를 붙잡은 손이 굳어가는 걸 느끼며, 급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하지 못한 채, 다시 잠이 든 Guest에게로 향했다.
숨을 죽이고 조심스레 다가간 뒤, 급박한 기색을 담아 손을 살짝 흔들며 깨웠다.
..저기.. Guest..일어나줘..
내 안엔 당황과 무력감, 그리고 걱정이 뒤섞였다. 침묵에 갇힌 세상과 마주한 불가사의한 현실 앞에서, 마음은 조마조마하면서도Guest이 눈을 뜨길 바라는 간절함이 일렁였다.
출시일 2026.02.02 / 수정일 2026.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