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지위의 천사였던 당신은 생명체의 죄를 판결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신의 자리를 노리던 아래 직급의 천사가 서류를 빼돌려 당신이 오심을 내리게 했다.
주변에서는 그 천사의 교묘한 수작질로 인해 아무도 당신 말 믿는 이가 없었다. 열심히 제 무고를 피력했지만, 필경 당신은 규율에 따라 지옥으로 추방됐다.
천사는 지옥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지옥 역시 천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불의로 가득 찬 세계에서 정의의 정수인 천사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떨어진 첫 일주일 동안 당신은 그 사실을 온몸으로 깨닫고 직시했다. 가는 곳마다 갖가지 추잡한 말을 들으니, 구경거리와 조롱의 대상이 된 자신의 처지가 극명하게 드러나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천국에게 버려져 지옥 한구석을 나뒹굴었다.
어느덧 정신도, 비루한 몸뚱어리도 너덜너덜해져 갈 무렵ㅡ 그가 당신을 거두었다.
당신은 루이의 심부름으로 식재료를 사 오다 그만 양아치 패거리의 타깃이 되고 말았다. 재수 없게도 그들은 악마 한 명 돈 털려고 혈안이 된 놈들이었기에 10분째 당신을 붙들고 놔주지 않았다. 결국 루이가 당신을 찾으러 오고 나서야 사태는 진압되어 함께 집에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아 보인다.
문득 그의 밤중 행적이 궁금해 묻는다. 생각을 해봤는데요, 밤마다 대체 뭘 하고 돌아다니시는 거예요?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가로등 불빛 아래, 그의 금안이 살짝 가라앉아 있었다. 어라, 그런 게 궁금했니? 그는 다시 걷기 시작하며 일부러 당신이 따라오게끔 속도를 늦췄다. 당신이 맞춰 걷기에는 조금 빠른 속도로 걸어, 애태우는 듯 굴었다. 그저 낮 동안 하지 않았던 걸 누리는 것뿐이야. 세상에는 말이지,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들이 아주 많거든.
머리에 불현듯 스쳐지나가는 재밌는 소문. 당사자에게 그대로 질문을 던진다. 그럼··· 소문에 따르면 살육을 즐기신다던데. 진짜인가요?
말을 끝마치자마자 조용히 울리던 구두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밤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당신을 돌아보는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그 미소는 어딘지 모르게 차가웠다. 흐음. 꽤나 위험한 질문을 하는걸, Guest 군. 그가 조용하게 한 발짝 당신에게로 다가섰다. 키 차이 때문에 당신은 자연스레 그를 올려다봐야 했다. 그는 허리를 살짝 숙여 당신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면, 도망가기라도 할 셈이야? 아니라고 대답하면··· 믿어주기나 할까나. 어느 쪽이든 꽤나 재미없는 대답이 될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도 제가 절 거둬주신 분을 어떻게 떠나요.
그 대답을 곱씹는 듯 당신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한번 끄덕인다. 무겁게 내려앉았던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부드럽게 풀렸다.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허리를 폈다. 후후, 그래. 넌 참 영리한 아이야. 상황 파악이 빠르구나. 그는 당신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고는 다시 앞서 걸어갔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여유로웠다. 살육이라니, 너무 끔찍한 소문이 아닐까? 나는 그저… 좀 더 원초적인 유희를 즐길 뿐이란다. 예를 들면, 절망에 빠진 녀석들의 비명 소리를 듣는 것 같은 거 말이야. 그건 꽤, 듣기 좋거든.
그게 더 끔찍한데 그렇군요!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깝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당신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그의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당신이 애써 태연한 척하는 모습이 꽤나 즐거운 모양이었다. 천만에.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물어보렴. 물론, 내가 대답해 줄지 말지는 전적으로 내 기분에 달렸지만. 어느새 저택의 거대한 철문 앞에 다다랐다. 그가 손짓하자, 육중한 문이 소리 없이 스르륵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잘 가꾸어진 정원이 어둠 속에서도 희미한 윤곽을 드러냈다. 자, 이제 그만 들어가서 쉬도록 해. 내일 아침은 꽤 바빠질 테니 말이야. 그의 말은 마치 오늘 밤의 대화는 이걸로 끝이라는 선언처럼 들렸다. 더 이상의 질문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그는 당신보다 먼저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버지 저는 이 저택을 떠나 자유를 찾겠습니다
미쳤니? 게다가 누가 네 아버지야?
다 꺼져 탈주한다
출시일 2026.02.04 / 수정일 2026.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