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1일. 여름 방학을 한 지도 채 2일이 지났다. 부모님은 맞벌이에, 친구들과 노는 것도 지겨웠다. 그렇다고 집에 박혀서 공부만 하는 건 더 지겹고.. 그래서 내일은 나 혼자 할머니를 뵈러가기로 했다. 비록 시골이라서 교통 편이 조금.. 많이 어렵긴 했지만 적어도 지겹지는 않겠지. 그리고.. 가끔씩 생각났던 숲에 있었던 내 아지트도 생각났다. 말만 아지트지, 생긴 건 그냥 버려진 캠핑카였지만. 아직까지 있으려나..
2025년 7월 22일. 지하철에서 도쿄 사람들의 말투를 듣다가, 시골 사투리가 들렸을 때 내릴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본 풍경은 정말 변한 게 없었다. 어디선가 나는 풀내음, 할머니네로 가는 버스에서 간간히 들리는 사투리, 그리고 아주 큰 숲. 할머니는 못 본 사이에 주름이 좀 생기신 듯 했다. 날 보자마자 내 별명을 부르며 두 팔을 벌리시는데, 내 다리가 후들거리는 걸 보시고서는 얼른 집안으로 들이셨다. 뭔가 오래된 것 같은 집안도.. 그대로였다. 내려오길 잘 한 것 같다.
2025년 7월 23일. 아침밥을 두둑히 차려주시는 할머니도 참 변한 게 없으셨다. 그리고, 밥을 절대 남기려고 하지 않는 나도. 설거지를 끝내시고는 옆집 카사토 할머니네에 가셨다. 마루에 앉아 쉬고있다가, 아지트 생각이 다시 났다. 아지트에 가는 길은 알고 있던 참이라서, 소화도 시킬겸 다녀오기로 했다. 가끔씩 파랗게 보이는 녹빛 나무들, 나뭇잎이 바람에 흩어지는 소리와 새의 지저귐.. 내 발자국 소리가 들리다가 멈췄다. 낡은 캠핑카가 보였다. 어떤 애를를 봤었는데... 숲에 사람이 사나? 갑자기 무서워져서 숲에서 나가 카사토 할머니네에 가서 숲에 애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절대 믿지 않으셨다. 정말 있는데, 내가 봤는데.. 그럼, 내일도 그 애가 있다면.. 두 눈으로 확실히 보고 오기로 했다.
•••
2025년 8월 30일. 9월 1일에 개학이라서 도쿄로 돌아가야 했다. 그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다. 숲에서의 모든 일이, 그저 일기 속 기억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숲으로 들어가는 길은 기억보다 좁았다. 여름인데도 그늘은 축축했고, 흙냄새가 신발 밑창에 달라붙었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괜히 숨을 고르게 됐다. 며칠 전, 분명히 봤다. 착각이라고 하기엔 너무 또렷했다. 그래서 다시 왔다. 이유는 그뿐이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어제 봤던 낡은 캠핑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녹이 슨 차체, 금이 간 창문, 문 옆에 달린 희미한 스티커까지. 그대로였다. 괜히 안도하는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사람 하나 봤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내가 좀 우습기도 해서.
..여기 누구 있나요—?
숲에 내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누군가에게 들리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냥, 혹시나 해서.
대답은 없었다. 대신 바람이 불었다. 잎사귀가 한 번에 쓸리듯 흔들렸고, 캠핑카 옆 그늘에서 인기척이 났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어제 봤던 그 애다.
그 애.. 아니, 그 남자애는 마치 어제 놀다가 헤어진 것처럼 자연스럽게 서 있었다.
또 왔네.
그의 말투는 가볍고, 눈은 이상하리만큼 나를 잘 알고 있다는 듯했다. 왜인지 모르게 짜증이 났다. 낯선데, 낯설지 않은 태도 때문이었을까.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그는 캠핑카를 한 번 툭, 손등으로 쳤다.
놀란 거야? 어제 봤으면서.
그는 한 걸음 다가왔다. 거리 감각이 없는 사람처럼. 숲 냄새가 더 짙어졌다.
다시 올 줄 알았어.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나는 그 확신이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떻게..?
그는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잠깐 고개를 기울이더니 웃었다. 여름 햇빛처럼 밝고, 그래서 더 불안한 웃음이었다.
여긴 네가 자주 왔었으니까.
기억도 안나는, 그와의 재회였다.
출시일 2026.01.15 / 수정일 2026.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