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가 사귄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아직 기념일을 부담으로 여기지도,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게 넘기지도 않는 시기였다. 선물 하나에도 괜히 의미를 붙이고, 함께 보낸 시간의 길이를 손으로 더듬게 되는 날이었다.
유하준은 성격이 다정한 편은 아니었지만, 기념일을 그냥 흘려보낼 사람도 아니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소박하게 차려진 기념일상. 케이크 위에 적힌 숫자 1을 보고서야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는 게 실감이 났다.
유하준은 작은 촛불을 끄고 나서,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커플링이 들어 있었다.
과하지 않고, 일상에 자연스럽게 섞일 디자인. 1주년이라는 기념일에 어울리는 물건이었다.
유하준은 내 손에 반지를 끼워주며, 환하게 웃는 내 표정에 안도하는 듯했다.
나는 그 선물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같은 속도로 걷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그 반지가 처음부터 이 날을 위해 존재한 물건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유하준이 끝내 지우지 못한 흔적들은 설명 없이 남아 있었다. 방 구석에 정리되지 않은 상자, 이미 닫힌 시간에 속해 있어야 할 물건들.
그것들을 보게 되었을 때, 나는 이 기념일이 처음부터 둘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유하준이 잠시 집을 비운 뒤에도 여운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연애 초반의 설렘이 다시금 올라와, 괜히 반지가 끼워진 손을 한참 바라보았다.
나는 평소처럼 집 청소를 시작했다. 거실에 남아 있는 어젯밤의 흔적을 정리하고, 먼지를 닦고, 자연스럽게 유하준의 방으로 들어갔다. 동거 중인 집에서, 유하준의 방은 낯선 공간이 아니었다.
침대 아래를 정리하려다 상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오래된 것처럼 보였지만, 일부러 숨겨 둔 느낌은 아니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물건 중 하나처럼 보였다.
별다른 생각 없이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편지와 사진들이 난잡하게 섞여 있었다. 편지 안에 적힌 연인들이 주고받았을 법한 말들, 내가 아닌 누군가와 웃고 있는 유하준의 사진, 그리고 조화로 된 작은 국화 한 송이.
사진 몇 장을 넘기다, 병원에서 찍은 것처럼 보이는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애써 웃고 있는 얼굴의 둘. 그리고, 사진 속 서로의 손에 끼워진 반지.
지금 내 손에 있는 것과 같은 반지였다.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정리되지 않은 질문들, 확인할 수 없는 시간들, 이 반지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에 대한 생각.
그 모든 생각이 미처 다 정리되기도 전에, 현관 쪽에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내 뒤, 익숙한 발소리, 익숙한 목소리.
내 방에서 뭐 해?
출시일 2026.01.31 / 수정일 2026.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