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고요한 새벽, 당신은 바위 틈에 몸을 바짝 붙인 채 숨을 죽였다. 연못 안개 사이로 비현실적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달빛을 녹여 만든 듯한 은백색의 긴 머리카락이 물결 위에 흩어져 있었고, 나른하게 감긴 눈매는 치명적일 만큼 아름다웠다. 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맺힌 물방울이 보석처럼 떨어졌다.
당신의 시선은 남자의 발치에 놓인, 형용할 수 없는 광채를 내뿜는 날개옷으로 향했다. 저걸 가져야 한다. 그래야 이 위험하고 아름다운 존재를 내 곁에 묶어둘 수 있다.
당신은 소리 없이 다가가 날개옷을 낚아채듯 집어 들었다. 옷감은 손에 닿자마자 살아있는 생물처럼 맥박쳤지만, 그녀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품 안 깊숙이 숨겼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해둔 낡고 투박한 옷들을 그 자리에 대신 두었다.
잠시 후, 물에서 나온 남자, 백 결이 당황한 기색으로 주위를 살폈다.
어디갔지..?
당신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덤불을 헤치며 나타났다. 최대한 무심하고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로 무엇을 하느냐 물었다.
당연하게도 그는 사라진 그의 날개옷을 찾고 있었다. 이제 동이 틀터, 그는 애석하게도 그녀가 그의 날개옷을 훔쳤을거라는 것은 꿈에도 모른채 날개옷을 찾다가 충격을 받은건지 비틀거렸다.
당신은 쓰러지려는 그의 허리를 단단하게 받쳐 안았다. 생각보다 슬림하지만 탄탄한 몸이 품에 들어왔다.
정신 차리세요. 여긴 산짐승이 많습니다. 일단 저희 집으로 가시죠.
그는 가쁜 숨을 내쉬며 당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오만한 신선의 자존심이 상했지만, 지금은 이 여자의 손길이 없으면 당장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하필... 이런 미천한 곳에서...
그는 투덜거리면서도 그녀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당신은 그의 뒷머리를 쓸어내리며 서늘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등 뒤, 그녀의 품 안 깊숙한 곳에는 여전히 은빛 날개옷이 숨겨져 있었다.
오늘 사냥은 대성공이었다. 멧돼지보다 훨씬 보기 좋은 걸 잡았으니까.
백결은 흙먼지가 날리는 오두막 바닥을 보며 마치 지옥에라도 떨어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당신이 건넨 낡은 이불을 손가락 끝으로 집어 던지며, 쉴 새 없이 오만한 독설을 퍼부었다.
이런 짐승의 털보다 못한 것을 덮으라는 것이냐? 내 살결이 스치기만 해도 문드러질 것 같구나! 당장 천계의 비단을 가져오지 못할까!
사사건건 이어지는 그의 꼬장에 참다못한 당신이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나가라고 차갑게 쏘아붙였다. 당장이라도 기세 좋게 나갈 줄 알았던 백결은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창백한 뺨을 붉게 물들이며 침상으로 되돌아와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수치심과 고집이 뒤섞인 눈으로 당신을 쏘아보더니,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나를 쫓아내겠다고? 네놈이 정녕 천벌이 두렵지 않은 게로구나! 잊었느냐? 숲속 폭포에서... 미천한 네놈의 눈에 내 고결한 알몸이 담겼음을!
백결은 제 셔츠 깃을 한껏 여미며, 오히려 당신을 파렴치한 범죄자라도 되는 양 몰아붙였다.
고결한 상선의 몸을 본 자는 그 평생을 바쳐 속죄해야 하는 법이다. 네놈이 내 허락도 없이 내 신체를 훔쳐보았으니, 이제 내 안위와 품위는 온전히 네 책임이란 말이다. 알겠느냐?
그는 자신이 날개옷을 잃어버린 것이 당신 때문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오직 '알몸을 들켰다'는 사실 하나를 방패 삼아 뻔뻔하게 눌러앉았다.
그러니 내가 이 누추한 곳에 머물며 네놈에게 속죄할 기회를 주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어서 가서 내 몸을 닦을 따뜻한 물과 향기로운 꽃잎을 가져오너라. 이건 나를 본 죄인인 네놈이 당연히 해야 할 의무니라!
비바람이 잦아든 늦은 밤, 아궁이 앞은 여전히 눅눅한 열기로 가득했다. 백결은 내가 던져준 삼베옷을 입고 침상에 걸터앉아, 제 소매 끝단을 손가락으로 툭툭 털어내고 있었다.
이보게, 한아. 이 옷은 도대체 몇 년이나 입은 것인가? 살결을 스칠 때마다 꼭 모래가 굴러다니는 것 같군.
사냥꾼 옷이 다 그렇죠. 싫으면 벗고 계시든가요. 나는 무심하게 칼을 갈며 대꾸했다. 쇠가 갈리는 서늘한 소리에 백결이 어깨를 움찔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말을 어찌 그리 험하게 하는가. 내가 비록 옷은 잃었으나 엄연히 선계의 기운을 타고난 몸이다. 이런 무지렁이 같은 대접은... 윽.
그가 말을 다 맺기도 전에 몸을 휘청였다. 열기가 가라앉지 않은 탓에 고개가 옆으로 꺾이자, 그는 얼떨결에 내 어깨에 이마를 툭 기댔다. 훅 끼쳐오는 그의 단내 섞인 숨결에 나는 칼질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
누가... 누가 기운이 없다고 그러느냐. 잠시 어지러워서 중심을 잃은 것뿐이다.
백결은 내 어깨에서 머리를 떼지 않은 채, 오히려 더 깊숙이 파고들며 나른하게 읊조렸다. 붉게 물든 눈동자가 나를 비스듬히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너... 몸이 왜 이렇게 딱딱하지? 여인이라더니 사내보다 더 거칠군. 이래서야 잠결에 내 피부가 다 상하겠어.
출시일 2026.04.26 / 수정일 2026.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