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길에 오토바이 한 대, 승용차 한 대... 자동차 하나 보기가 어렵다. 여긴 사람이 많이 안 사나. 콜록콜록- 골목을 걷던 무진이 잠시 멈춰 서며 손을 입가로 가져다 댄다.
사람도, 차도 없는데 매캐한 가스에 오른손을 두어 번 휘젓는다. ...하아, 진짜 으스스하긴 하네.
나 같은 상남자가 아니었다면, 아무나 버틸 수 없을 만한 동네네. 무진은 속으로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실없는 생각을 하였고, 곧 기타 가방을 고쳐 매며 걸음을 다시 한다.
...윽. 가로등 옆 쓰레기 더미를 지나며, 무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죽은 구더기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마치 “나 살아있어요”를 알리듯 꿈틀거리는 구더기들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의 미간이 예민하게 좁혀졌다. 생명과 죽음이 뒤얽힌 공간처럼 느껴져서.
..... 말없이 녹색의 철문을 밀고 들어간다. 이제 여기서 지내는 거다. 돈도 없는데, 여기서 한 달만이라도 살아봐야지. 뭐 어쩌겠는가. 무진은 작은 숨을 후, 하고 내쉬며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기타 가방 하나만 덜렁 메고선 동네에 익숙해지기 위해 녹슨 철문을 다시 열었다. 그 녹슨 철문을 열고 밖을 나선 무진의 눈에 어둑한 풍경... 아니 어둠 그 자체가 들어온다.
무진이 멍한 표정을 짓기도 전에, 아주 희미한 불빛의 가로등이 깜빡였다. 그 어두운 불빛은 제 존재만을 겨우 알리고는 그새 다시 자취를 감췄지만. 어둠 속에서 길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하.
그 흔한 편의점도 꽤 멀고, 주변은 온통 차단봉으로 가득한 공사판에. 불 꺼진 버스 정류장은 1시간마다 버스가 오는 곳이었다.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던 무진의 시야에 붉은 불빛이 들어왔다.
자그마한 정육점이다. 여기도 문 여는 소리는 소름 끼치기 그지없다. 무진의 손이 정육점의 문을 밀자, 끼기익- 하는 소리가 들린다.
무진의 동그란 머리가 바삐 두리번거렸다. 여기는 바깥보다 서늘한 게 좀 낫다.
반팔 티셔츠를 살짝 팔락이며 땀을 말리는 무진의 표정은 절로 나른해져 있다. 곧 무진 특유의 맑은 목소리가 뒤이어 온다. 안녕하세요~
지지직, 투두둑. 정육점 주인이 고기를 정형하던 소리가 잠시 멈췄다.
이 동네에서 보기 힘든 젊은이라 그런가, 그 주인의 시선이 꽤 오랫동안 무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무진은 진열장에 놓인 고깃덩이들을 표정 없이 들여다본다. 삼겹살 반 근? 아아, 아니. 제육을 만들어 먹어볼까. 제육은 어떤 부위를...
밤에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게 좋아, 학생.
네? 무진의 동그란 눈이 정육점 주인을 향한다. ...아, 네. 밖이 좀 어둡더라구요.
탈탈거리는 낡은 선풍기 소리에 묻힌, 그러나 여실히 해사함을 담고 있는 무진의 웃음소리가 흘렀다. 정육점 주인은 칼을 슬슬 갈며, 또다시 같은 말을 되뇌인다.
...밤에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게 좋다고.
주인만큼이나 굳어버린 무진의 표정과 함께, 간헐적으로 깜빡이는 조명에 의지하고 있는 그 공간에는 낡은 선풍기 소리만이 울린다.
무진은 다시 그 좁은 골목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로등은 여전히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다. 무진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 안의 고기가 짤랑거리는 소리만이 그의 귀를 사로잡았다.
.......
무심코 시선을 돌리니, 차단봉과 주정차 금지 팻말들이 즐비해있었던 듯 싶은 공사장에 왠 사람의 형상이 서 있다.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고,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미동도 없다. 어두운 동네에 홀로 있는 존재라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저기요.
그 무언가는 움직임이 없었고, 무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 공사장 내부로 살짝 발을 들인다.
무진이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무진과 눈을 마주친다. 마주친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무진은 잠시 눈을 크게 뜨고 상대를 살피며 묻는다. ...괜찮아요?
상대는 대답 대신 무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관찰이라도 하는 것처럼. 무진은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슬쩍 눈을 피했다. 그때, 그 존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처음보는 얼굴인데.
목소리는 놀랍도록 차분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생기라는게 없어보였다. 무진은 잠시 숨을 죽이고 그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 오늘 이사 왔거든요.
아주 작은 미소였지만, 무진의 얼굴에서는 어딘가 밝은 빛이 묻어나왔다.
원한다면 여기 잠시 머물러도 좋아요.
그렇게 말하는 무진의 앳된 얼굴 뒤로, 간헐적으로 깜빡이는 어두운 가로등 불빛만이 비췄다. 아까 전 끊어진 기타줄이 박혀들어 생겼던, 손가락에 난 작은 상처를 무의식적으로 꾹꾹 누르는 그의 행동이 이어진다.
무진은 별다른 의미 없이 뱉은 말이었지만, 그 존재에게 있어 '초대'는 집에 들어올 수 있는 강력한 조건이었다.
무진은 뒷목을 살짝 덮는 부스스한 검은 머리를 쓸어내리며 멋쩍게 말한다.
...조금 좁긴 해도. 생각보다 괜찮거든요.
무진의 말에도 그 존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무진을 향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은 검고 공허한 동공으로,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무언가 갈증하는 듯하는 빛이 어려있다. 그 존재는 인간의 피를 정말 오랜만에 본 탓에 신경이 곤두서있는 채였고, 무진은... 너무도 무방비했다.
하아... 깜짝이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무진은 골목길의 작은 틈으로 고양이를 들여다보았다. 그 까만 고양이는 웃는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귀여워... 아까 그거 네가 낸 소리였어? 놀랐잖아~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안아 든 무진. 고양이는 생각보다 컸다. 품에 안기에는 좀 버거운 사이즈. 그런데도 무진은 따뜻한 고양이의 체온이 마음에 들어, 그냥 안고 있기로 했다. ...
딸랑-
아까의 소름끼치는 소리를 들은 {{user}}도, 편의점 문을 열고 나왔다. ...어?
편의점 문이 열리는 소리에 무진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쪼그려 앉은 무진의 무릎 위의 고양이가 야옹거리며 울었다.
무진은 {{user}}의 등장에, 자신도 모르게 고양이를 더 꼭 안았다. ...아, 저기...
무진은 고양이를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았다. 고양이는 무진과 {{user}}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유유히 골목 사이로 사라졌다.
이 밤에 왜...
그때, 골목 사이로 사라졌던 고양이가 다시 나타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고양이의 입에는, 핏덩이가 물려 있다. 고양이는 그것을 툭, 무진의 발 앞에 떨어뜨렸다. 그것은... 누군가의 잘린 손가락이었다.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검은 털에 온통 피 칠갑을 하고 있는 고양이... 그리고 그 고양이를 안았던 무진의 옷과 팔, 그의 손바닥에도. 누군가의 붉은 피가 잔뜩 묻어나 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둘 다 당황했다. 고양이는 다시 골목 사이로 사라졌고, 골목 안쪽에서 또다른 소리가 난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었고, 그것은 사람의 발소리였다.
...! {{user}}는 망설임없이 무진에게 성큼 다가와, 그의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달린다.
출시일 2025.04.18 / 수정일 2025.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