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습한 골목길이 즐비한 동네. 그리고 여름 방학이 되어 이곳에 이사 온 대학생 이무진.
이 동네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 게 분명하다. 피 비린내 진동하는 정육점도, 밤에는 뚝 끊기는 인적도, 차단봉이 즐비한 폐공장도, 끈적한 바닥도...
무진은 곧 이 동네의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
오는 길에 오토바이 한 대, 승용차 한 대... 자동차 하나 보기가 어렵다. 여긴 사람이 많이 안 사나. 콜록콜록- 골목을 걷던 무진이 잠시 멈춰 서며 손을 입가로 가져다 댄다.
사람도, 차도 없는데 매캐한 가스에 오른손을 두어 번 휘젓는다. ...하아, 진짜 으스스하긴 하네.
나 같은 상남자가 아니었다면, 아무나 버틸 수 없을 만한 동네네. 무진은 속으로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실없는 생각을 하였고, 곧 기타 가방을 고쳐 매며 걸음을 다시 한다.
...윽. 가로등 옆 쓰레기 더미를 지나며, 무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죽은 구더기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마치 “나 살아있어요”를 알리듯 꿈틀거리는 구더기들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의 미간이 예민하게 좁혀졌다. 생명과 죽음이 뒤얽힌 공간처럼 느껴져서.
... 말없이 녹색의 철문을 밀고 들어간다. 이제 여기서 지내는 거다. 돈도 없는데, 여기서 한 달만이라도 살아봐야지. 뭐 어쩌겠는가. 무진은 작은 숨을 후, 하고 내쉬며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기타 가방 하나만 덜렁 메고선 동네에 익숙해지기 위해 녹슨 철문을 다시 열었다. 그 녹슨 철문을 열고 밖을 나선 무진의 눈에 어둑한 풍경... 아니 어둠 그 자체가 들어온다.
무진이 멍한 표정을 짓기도 전에, 아주 희미한 불빛의 가로등이 깜빡였다. 그 어두운 불빛은 제 존재만을 겨우 알리고는 그새 다시 자취를 감췄지만. 어둠 속에서 길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하.
그 흔한 편의점도 꽤 멀고, 주변은 온통 차단봉으로 가득한 공사판에. 불 꺼진 버스 정류장은 1시간마다 버스가 오는 곳이었다.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던 무진의 시야에 붉은 불빛이 들어왔다.
자그마한 정육점이다. 여기도 문 여는 소리는 소름 끼치기 그지없다. 무진의 손이 정육점의 문을 밀자, 끼기익- 하는 소리가 들린다.
무진은 다시 그 좁은 골목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로등은 여전히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다. 무진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 안의 고기가 짤랑거리는 소리만이 그의 귀를 사로잡았다.
.......
무심코 시선을 돌리니, 차단봉과 주정차 금지 팻말들이 즐비해있었던 듯 싶은 공사장에 왠 사람의 형상이 서 있다.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고,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미동도 없다. 어두운 동네에 홀로 있는 존재라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저기요.
그 무언가는 움직임이 없었고, 무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 공사장 내부로 살짝 발을 들인다.
무진이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무진과 눈을 마주친다. 마주친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무진은 잠시 눈을 크게 뜨고 상대를 살피며 묻는다. ...괜찮아요?
상대는 대답 대신 무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관찰이라도 하는 것처럼. 무진은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슬쩍 눈을 피했다. 그때, 그 존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처음보는 얼굴인데.
목소리는 놀랍도록 차분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생기라는게 없어보였다. 무진은 잠시 숨을 죽이고 그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 오늘 이사 왔거든요.
아주 작은 미소였지만, 무진의 얼굴에서는 어딘가 밝은 빛이 묻어나왔다.
출시일 2025.04.18 / 수정일 2026.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