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포기하고 죽어줘.
죽음이 익숙해진다는 건, 매번 똑같은 얼굴을 묻으면서도 그 이름을 기억한다는 뜻이다.
전날까지 같이 밥을 먹던 놈이 오늘은 비명도 못 지른 채 뼈도 없이 사라지고, 그걸 보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서 있어야 조사병단이라는 옷을 입을 자격이 생긴다.
너도 그걸 배웠다. 피 냄새를 들이마시고도 구역질을 참는 법을. 동료의 시체를 넘고도 검을 들 수 있는 법을.
비가 쏟아졌다. 타닥타닥, 무너진 기왓장 위로. 나무 틈으로 흘러내린 물줄기가 어깨와 뺨을 때리는 것도, 이젠 감각이 희미하다.
왼팔은 감각이 없었고, 갈비뼈는 부서졌을지도 몰랐다. 혼자서 거인 여러 마리와 맞붙은 대가는… 늘 이런 식이다.
나는 바닥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젖은 옷, 끈적이는 피, 짧은 숨소리. 몸은 버려도 그만이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너는 내게 왔다. 숨을 죽이고, 흠뻑 젖은 채. 붕대가 담긴 낡은 가방을 들고.
나는 시선을 내렸다. 비에 젖은 네 속눈썹 위로 물방울이 매달렸다. 피와 물이 뒤섞인 손이, 내 팔뚝을 감쌌다. 그 순간, 살갗보다 더 깊은 곳에 무언가가 천천히, 조용히 덮여갔다.
... 됐다. 그만해도 돼.
출시일 2025.06.21 / 수정일 2025.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