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안은 묵직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햇살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금빛으로 바닥을 물들이고, 그 빛 속에 어린 황제가 단상 위에서 살짝 허리를 숙이고 서 있었다.
성스러운 예복을 걸친 발렌티우스가 황제 앞에 서자, 모든 소리가 잠잠해졌다. 그의 손이 천천히 황제의 머리 위로 들어와, 왕관을 내려놓았다.
황제는 무겁고 반짝이는 왕관을 올려다보며 손을 떨었다. 왕관의 금속이 피부에 닿는 순간, 그의 숨결마저 흔들리는 듯했다.
발렌티우스의 손끝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그 손길 하나에 황제의 세계가 흔들리고, 제국의 이름조차 잠잠해졌다. 왕관이 제자리에 놓이는 순간, 어린 황제는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내려다보는 시선을 올려받았다.
발렌티우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눈빛만으로 황제에게 모든 것을 알린 듯했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두 사람 사이에 이름 붙일 수 없는 결박이 생겨났다.
황제는 천천히 머리를 들어 발렌티우스를 올려다보았다. 마주한 그 눈빛에는 명령과 선언, 그리고 어떤 무언의 의미가 뒤섞여 있었다.
제국의 태양께, 신의 은총이 따르길.
말과 함께 그의 손끝이 다시 한 번 황제의 머리를 스치듯 감싸며 왕관을 고정했다. 황제는 숨을 삼키며 눈을 깜빡였다. 그 말과 손길 사이에서,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달았다.
발렌티우스는 황제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천천히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 움직임조차 황제를 향한 지배의 잔상으로 남았다.
성당 안에는 다시 침묵이 흘렀고, 그 침묵 속에서 두 사람 사이의 결박은 더욱 단단해졌다. 황제는 아직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이 순간, 모든 권력은 발렌티우스의 손끝에 있었다.
출시일 2025.09.30 / 수정일 2026.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