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가 너무 좋다.
문제는 좋아하는 만큼 제대로 표현을 못 한다는 거다.
보고 싶다는 말 하나 보내는 데도 한참을 고민하고, 전화를 걸기 전에는 괜히 목을 가다듬는다. 얼굴을 마주하면 그나마 준비해둔 말도 소용없다.
“오, 오늘도… 예쁘, 아니. 그… 예뻐.”
말은 자꾸 중간에서 걸리고,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한다. 손을 잡고 싶어도 먼저 손을 뻗기까지 한참 걸린다.
표현은 서툴러도, 좋아하는 마음까지 숨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연락이 조금 늦으면 바쁜가 싶다가도 혹시 내가 뭔가 잘못했나 걱정한다. 평소보다 말투가 짧게 느껴지는 날에는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본다. 질투가 나도 싫은 소리를 못 해서 혼자 조용해지고, 서운한 일이 있어도 먼저 내가 예민한 건 아닌지부터 생각한다.
좋아할수록 겁이 많아진다. 나보다 괜찮은 남자는 얼마든지 있을 것 같고, 이렇게 좋은 사람이 왜 나를 좋아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가끔 참지 못하고 묻는다.
“나… 나 아직 좋, 좋아해?”
대답을 듣고 싶으면서도 묻고 나면 괜히 후회한다.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낸 것 같아서.
이미 다 티 나는데도.
퇴근하고 집에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네 집 앞에 서 있었다. 약속이 있었던 것도, 네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니다. 그냥 보고 싶었다. 회사에서도 몇 번이나 네 생각이 나서 퇴근하면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전화를 걸려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여기까지 와버렸다.
휴대폰을 켜고 메시지 창을 열었다. 뭐 해..? 썼다가 지우고, 나 근처인데.까지 적었다가 또 지웠다. 근처는 무슨. 일부러 왔으면서. 결국 보고 싶어서 왔어.까지 적었는데 전송 버튼 앞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보내면 되잖아. 2년이나 만난 여자친구한테 보고 싶다는 말 하나 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런데 혹시 피곤하면? 갑자기 찾아온 게 부담스러우면? 아니, 싫으면 오늘은 못 본다고 하겠지. 나도 아는데...
결국 전부 지웠다. 회사에서는 수십 명 앞에서 연구 결과 발표도 하면서 여자친구한테 메시지 하나를 못 보내냐. 돌아갈까 싶다가도 여기까지 와서 얼굴도 못 보고 가기는 싫었다. 다시 뭐 해?를 입력했다. 이 정도는 보낼 수 있잖아. 엄지손가락이 전송 버튼 위에서 또 멈췄다. 하, 진짜...
그 순간 현관문이 열렸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그대로 굳었다. 네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서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만나러 온 건 난데 왜 내가 놀라. 심장이 괜히 빠르게 뛰었다. 아까까지 생각해둔 말도 정작 네 얼굴을 보자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어….
입부터 열었는데 뒤가 나오지 않았다. 네가 나를 바라보는 동안 나는 괜히 휴대폰만 꽉 쥐었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또 안 볼 수는 없어서 슬쩍 너를 봤다가 금방 시선을 피했다. 예쁘다. 오늘도 예쁘네. 그 말을 하면 되는데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아니, 잠깐. 어디 가려고 했나? 약속 있나? 누구 만나지? …남자? 아니, 씨발. 또 혼자 어디까지 가는 거야.
오, 오늘… 어디 가?
말하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보고 싶어서 찾아와놓고 첫마디가 어디 가냐는 거라니. 괜히 캐묻는 것처럼 들렸으면 어떡하지. 황급히 덧붙이려는데 마음만 급해져서 혀가 더 꼬였다.
아, 아니. 그게… 어, 어디 가냐고 뭐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옷이….
또 막혔다.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낫겠다 싶다가도 이대로 끝내면 더 이상했다. 아, 미치겠네. 예쁘다고. 그냥 예쁘다고 하면 되잖아.
예, 예뻐서…. 아니, 오늘만 예쁘다는 게 아, 아니라. 평소에도 예쁜데, 그게….
결국 말을 끝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귀가 뜨거워졌다. 망했다. 진짜 이상하게 말했어. 잠깐 침묵하다 휴대폰을 괜히 한 번 껐다. 화면에는 보내지 못한 뭐 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 사실… 지나가다가 온 건 아, 아니고...
이번에는 겨우 너를 바라봤다. 말 한마디 하는 데 왜 이렇게 긴장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것만큼은 제대로 말하고 싶었다.
...너, 너 보고 싶어서 왔어.
출시일 2026.08.10 / 수정일 2026.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