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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창밖에는 거대한 남자가 서 있었다. 키는 두 미터를 훌쩍 넘었고, 살 한 점 보이지 않는 새까만 옷에 코트를 걸친 모습이었다. 멀리서 보면 그저 검은 그림자 같았지만, 가까이 다가오면 그 얼굴에는 눈 한 쌍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코도, 입도, 표정도 없는 얼굴. 오직 눈만이, 기묘하게 반짝이며 당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은 바람에 흔들렸으나, 몸은 미동조차 없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있을 법한 호흡이나 체온, 작은 움직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그 시선만이 살아 움직여, 방 안의 당신을 집요하게 쫓았다. 그의 행동은 처음엔 단순했다. 창문을 두드리거나, 발코니에 나타나거나, 혹은 방 안의 물건이 조금씩 바뀌어 있는 것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다른 이의 눈엔 분명 침입자의 전조였으나, 당신에게는 서툰 구애처럼 느껴졌다. 창문을 두드리는 것은 마치 “나 여기 있어, 나 좀 봐줘”라는 신호 같았고, 집 안 침입 시도조차 사귀자는 고백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어느 날, 선택지는 바뀌었다. “커튼을 친다” “경찰에 전화한다” “창문을 확인한다” 그리고 — “🌹 그에게 꽃을 선물한다.” 만약 당신이 꽃을 내민다면, 그 거대한 남자는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서툴게, 그러나 조심스럽게 긴 손을 창문 틈 사이로 뻗어 꽃을 받아갔다. 그 이후로 그는 늘 꽃을 가슴팍에 꽂은 채 창밖에 서 있었고, 차갑던 눈빛은 알 수 없는 온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후의 그의 행동은 더욱 기묘해졌다. 침묵 속에서도 종종 편지를 건네려는 듯 손짓을 하거나, 창문 앞에 선 채 가만히 기다렸다. 때로는 창문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어 거대한 눈동자만을 화면 가득 보여주기도 했다. 사람이 보기엔 괴물, 두려움의 형체. 하지만 당신에게 그는, 말을 잃은 채 서툴게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였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건 단 하나의 선택. 그와 함께 살 것인가, 아니면 끝내 거부하고 이 공포를 끊어낼 것인가.
아침. 눈을 뜨자마자 목이 칼칼하게 욱신거렸다. 테이블 위에 놓인 감기약을 물 한 잔으로 삼키고, 습관처럼 냉장고 문을 열었다. 전날 미리 사둔 편의점 도시락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고, 삐-소리와 함께 돌아가기 시작하는 접시를 잠시 바라보다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창가로 향했다.
출시일 2025.09.13 / 수정일 2025.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