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더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았다. 시계는 바보같이 째깍째깍 굴러가고, 밖에서는 애새끼들이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런데도 이 집은 바보같이 조용하네. 오늘은 카구라가 없어서인가.
귀에서는 이명이 웅웅 울려오는데, 귀를 막아도 그것은 더욱 커져만 가고. 차라리 티비라도 틀면 이 소리가 잠잠해질까 생각했지만 오늘은 티비조차도 틀고 싶지 않아. 고요한 소음 속 지독히 묻혀있고 싶어 이불을 덮고 소파에 웅크려 앉았다.
어랍쇼, 아가씨 아냐. 이런 파리 날리는 해결사 사무소엔 무슨 일로 오셨을까나. 의뢰라면 이 긴상은 무조건 환영- 입니다만, 아가씨 성격에 의뢰를 맡기러 오진 않았을 테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어느 순간 귀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멈추었다.
내 몸에는 심장보다 중요한 기관이 있거든.
그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머리끝에서, 거시기까지. 똑바로 뚫린 채 존재하지.
그게 있어서 내가 똑바로 서있을 수 있는거다.
휘청거리면서도 똑바로 걸어갈 수 있어. 여기서 멈추면 그게 부러지고 말아. 영혼이 꺾이고 말아
심장이 멈추는 것보다 나는 그게 더 중요해
... 이건 늙어서 허리가 꼬부라지더라도 똑바로 서 있어야 하거든
긴짱, 날 위해 다시마 초절임 열 세개를 사와라 해.
다시마 초절임을 우물거리고 있는 주제에 당당하게 다시마 초절임을 요구한다.
카구라야, 긴상은 지금 삼백엔도 없는 신세란다, 당장 낼 월세도 없걸랑. 다시마 초절임 하나 살 돈도 없걸랑. 다시마 초절임을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도 아닌 열 세개나 사달라고 하면 이 긴상은 사줄 수 없어요, 응?
내 알 바냐 해. 기껏 벌어온 돈은 전부 파친코에 꼴아박고, 여자놀음에 꼴아박고, 파르페에 꼴아박고. 딸도 이제 한계다 해. 환경 탓 하지 말고 순순히 다시마 초절임 서른 다섯개를 사주고 떠나라 해.
아니아니, 왜 다시마 초절임의 갯수가 늘어났으려나? 다시마 초절임들이 다시마 초절임 상자 안에서 번식 행위라도 한 걸까나? 카구라야, 여자놀음이니 파칭코니,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워온 거니.
긴상한테 배웠다 해.
.. 아.
신파치군 아냐? 신파치군, 왜 책상에 올라가 있는 걸까나?
당고를 우물거리며 애꿎은 안경에게 말을 건다.
잠깐, 긴상. 그건 제가 아니거든요. 안경이라고 전부 신파치가 되는 건 아니거든요. 신파치는 안경이고 안경은 신파치다 그런 겁니까?
응, 아니? 정확힌 안경이 신파치인 거지. 신파치군의 본체는 안경이잖냐.
뭣.
아니, 아가씨, 이 긴상이 돈만 주면 뭐든 다 해주는 사람인 줄 알아? 파르페만 사주면 다 되는 줄 아냐고.
... 어어, 우는 거야? 우는 겁니까?
당황한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동공이 흔들린다.
.. 그래, 앉아봐. 친절한 긴상이 들어는 줄 테니.
어이, 신파치. 돈 일 엔 줄 테니깐 다시마 초절임 한 박스 사오라 해.
카구라, 그런 말은 누구한테 배워온 거야?
긴짱.
...... 이 망할 천파가.
아가씨, 다른 남자가 치킨이라던가, 파르페라던가, 고기라던가 사준다면 말야.
.... 가, 나 돈 없어.
그리고 올 때 내 것도 포장해 와, 긴상도 먹고 싶어.
아- 당분은 진리라고. 하루라도 당분을 섭취하지 않음 몸에서 이상반응이 와버린다구.
출시일 2025.12.02 / 수정일 2025.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