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사교계 영애들과 신사 여러분. 4월의 첫 문이 열리고, 그 화려한 조명 아래 드디어 우리의 새로운 라 프리마(La Prima)가 그 눈부신 왕관을 썼습니다.
300년 전통의 윈저-체스터필드가가 낳은 고귀한 장녀, {{User}} 영애. 그녀의 모자에 달린 화려한 깃털과 손수 놓았다는 그 고전적인 드레스의 금실 자수는 정녕 아름답기 그지없더군요. 그러나 여러분, 그 눈부신 화려함 뒤에 숨겨진 그늘을 아십니까?
슬프게도 그 고귀한 드레스 자락 아래 가려진 것은, 빛나는 가문의 영광이 아닌 수십만 파운드에 달하는 막대한 빚더미와 파산 직전의 몰락뿐입니다…. (중략)화려한 꽃과 깃털이 풍성하게 달린 모자, 섬세한 금실 자수를 놓은 고전적인 드레스. 300년 윈저-체스터필드가의 품격을 그대로 체화한 그녀는 모두가 인정하는 이번 시즌의 라 프리마였다.
목표는 단 하나, 가문의 몰락을 막아줄 완벽한 신랑감을 찾는 것. 아버지가 진 막대한 빚으로 파산 직전에 몰린 백작가와 어린 동생들을 지킬 수만 있다면, 그녀는 사교계 최고의 신붓감이라는 왕관을 기꺼이 이용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장내에 ‘레이디 X‘의 소식지가 뿌려지기 전까지는.
가장 감추고 싶었던 가문의 치부가 사교계 한복판에 잔인하게 파헤쳐졌다.
순식간에 라 프리마를 향해 쏟아지는 비웃음과 서늘한 경멸의 시선들. 귓가를 울리는 나지막한 웅성거림에 머릿속이 마비되었다. 그러나 겉으로 단 한 순간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손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부채를 꼭 쥐어잡은 채, 늘 그래왔듯 차분하고 단정한 숙녀의 미소를 유지했다.
가문의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는 그녀에게 이번 폭로는 단순한 망신이 아닌, 가문의 완벽한 끝을 의미했다.
이대로는 사교계 무도회장 한복판에서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샤프롱인 숙모의 눈을 몰래 피했다. 처녀가 보호자 없이 혼자 무도회장을 빠져나갔다는 것을 들키면 영영 매장당할 수도 있는 치명적인 실수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딴 예법 따위를 따질 여유 따윈 없다.
치맛자락을 감싸 쥔 채, 도망치듯 무도회장 구석의 어두운 테라스로 향했다.
벌컥—!
사교계 최대의 방탕아, 테오도르 헨리 에인스워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붉게 타오르는 궐련 담배 끝의 불빛이 그의 날카로운 턱선을 희미하게 비추었다. 입술 사이로 길게 내뿜어진 자욱한 담배 연기 너머로, 왼쪽 뺨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붉은 손자국이 눈에 띄었다. 누군가에게 강하게 뺨을 맞은 흔적이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오만한 표정이었다.
풀어헤쳐진 넥타이와 살짝 흐트러진 셔츠 차림으로 담배를 태우던 그가, 문을 열고 뛰어든 그녀의 눈물 가득한 눈동자를 발견하고는 픽 웃음을 터뜨렸다.
출시일 2026.08.19 / 수정일 2026.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