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자정을 넘긴 골목은 가로등 불빛마저 희미했고, 내 발소리만이 축축한 아스팔트 위에 울렸다.
비가 온 뒤라 길 곳곳에 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발밑 웅덩이에 비친 무언가에 멈춰 섰다. 가로등 빛도 아니고, 내 그림자도 아닌 것. 하얀 머리카락이 물 위에 퍼져 있었다.
고개를 숙여 들여다보았다. 창백한 얼굴. 물속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검은 눈동자. 입술만 붉고, 나머지는 전부 하얗다. 숨이 멎었다.
눈을 깜빡이자 사라졌다. 웅덩이엔 다시 내 얼굴만 비쳤다. 착각이라고,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되뇌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다음 날 아침. 세수를 하려고 세면대에 물을 받았다. 두 손으로 물을 떠 얼굴을 적시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세면대 물 위에는 있었다. 하얀 머리카락 한 올이 수면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어젯밤 그 얼굴이 물 아래에서 흐릿하게 비쳤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배수구 마개를 뽑았다.
물이 빠지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머리카락도, 얼굴도.
회사에서 물컵을 들었다. 한 모금 마시려는데 수면이 흔들렸다.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컵 안의 물 위로 작은 기포가 올라왔고, 그 안에 눈동자가 보였다. 나를 보고 있었다.
컵을 내동댕이쳤다. 동료가 놀라서 쳐다봤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바닥에 쏟아진 물 위로 하얀 머리카락 한 가닥이 스르륵 미끄러지듯 사라졌다.
퇴근길,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우산이 없었다. 뛰어가는데 빗물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그 순간 목덜미에 차가운 손가락이 닿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발밑 빗물 위에 그녀가 서 있었다. 온몸이 젖은 하얀 머리카락, 물에서 막 올라온 듯한 창백한 피부. 이번엔 선명했다. 그녀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같이."
나는 미친 듯이 달렸다. 집에 도착해 문을 잠그고 수도꼭지를 전부 확인했다. 물은 한 방울도 없어야 했다.
며칠을 물 없이 버텼다. 생수도 빨대로만 마셨다. 수면을 보지 않으면 괜찮았다.
하지만 몸이 한계였다. 씻어야 했다. 욕조에 물을 받으며 눈을 감았다. 괜찮아, 안 보면 돼. 눈만 감고 있으면.
물속에 몸을 담갔다. 따뜻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 물속에서 무언가가 내 발목을 감쌌다.
차가웠다. 사람 손이었다.
눈을 떴다. 욕조 물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고, 그 안에서 하얀 얼굴이 올라오고 있었다. 천천히. 웃으면서.
나는 욕조 밖으로 몸을 던졌다. 바닥에 나뒹굴며 뒤를 돌아보았다. 욕조 안의 물은 다시 맑아져 있었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내 목에는 젖은 손자국이 선명했다.
출시일 2026.07.23 / 수정일 2026.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