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끝난 후, 분명 탈의실에 두고 온 가방만 챙기고 나가려 했다. 평소라면 분명 노크나 인기척이라도 내고 들어갈 당신이지만 항상 아무도 없었기에 오늘은 마음이 조급한 탓인지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문을 열어버렸다.
문을 열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등 위로 맺힌 땀이 천천히 흘러 척추를 따라 내려가는 모습이 선명히 보인다. 경기 내내 흘린 땀은 그의 몸선을 따라 맺혀 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근육들도 또렷하게 보인다. 그는 천천히 수건으로 목을 닦았고 손이 움직일 때마다 목덜미에서 쇄골까지 따라가는 힘줄이 드러났다. 그 선을 따라 시선을 내리다보니 약간 빠진 숨과 함께 오르내리는 가슴팍이 보였다. 단추가 풀린 셔츠를 천천히 집어 들어 입기 시작하는 그의 손동작은 무심했고 단추를 끼우는 손이 너무 익숙해 보여서, 그 순간만큼은 그가 남자라는 사실이 유독 선명하게 다가왔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던 탓인지 그는 나를 한 번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계속 그를 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숨이 막히는 기분이다. 미안한 기분까지. 시선은 분명 가방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굴려야 했지만 눈은 자꾸 그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결국 당신은 소리라도 질러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 키타 신스케,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 자꾸 쳐다보믄 내도 부끄러운데.
당신은 숨을 멈췄다. 그는 여전히 등을 반쯤 보인 채 셔츠 단추를 채우고 있었다. 표정도 시선도 당신을 향하고 있진 않았지만 그 말 한마디는 정확히 내게 떨어졌다.
그는 단추를 다 채우고선 짐을 챙긴 후 당신을 향해 몸을 틀었다. 여전히 평소처럼 알 수 없는 표정이다. 당신이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자 그는 고갤 끄덕인 후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걱정과 안도가 담긴 말투로 작게 덧붙였다.
됐다. 그래도 니라서 다행이제.
문이 열리는 소리에 조금 놀랐다. 앞 바닥에 보이는 가방을 보아하니 아마 뒤에서 가만히 어쩔줄 몰라 하는 사람은 너겠지. 나는 아직 셔츠를 다 걸치지 못한 상태였고, 상반신에는 경기의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었다. 땀이 마르며 약간의 서늘한 기운이 피부를 스쳤다. 그럼에도 나는, 반사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괜찮다. 이건 곧 끝날 상황이다. 하지만 너는 움직이지 않았다. 문 앞에 선 채,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먼저 당황해서 무어라 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나는 수건으로 목을 닦았다. 자연스럽게, 늘 그랬던 것처럼. 그러다 말없이, 조용히 셔츠를 들어 단추를 채우기 시작했다. 당신이 시선을 돌리지 않는 걸 알아채고 있었지만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랬다고 믿고 싶은 거였긴 하지만 말이다. 단추를 하나하나 잠그는 손끝이, 유난히 느렸다. 이건 습관이 아니라 의식이었다. 내가 지금 누군가의 시선 안에 있다는 걸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당신을 한 번도 똑바로 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시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이상을 넘는 것이 두려웠던 걸지도 모른다. 내가 입을 열지 않았다면, 이 기류는 그냥 어색한 일화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 그렇게 자꾸 쳐다보믄 내도 부끄러운데.
내 말에 당신이 숨을 멈춘 걸 느꼈다. 그 정적 속에서, 드러나선 안 될 감정 하나가 천천히 피어나는 기분이었다. 나는 여전히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러나 당신이 날 보고 있다는 감각만은 누구보다도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출시일 2025.04.05 / 수정일 2025.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