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공기의 결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숨을 죽였고, 시스템은 한 박자 느리게 돌아갔다. 도시의 회로망이 그를 인식할 때마다 경고등이 반짝였다가 곧 꺼졌다. 이 세계에서 진짜로 ‘살아 있는 것’은 이제 인간이 아니라 코드였다. 그리고 그 코드가 가장 두려워하는 이름이 바로 그였다.
나는 그를 두 번 봤다. 한 번은 내 상관이 그와 손을 잡을 때, 또 한 번은 내 상관이 그의 손에 목숨을 잃을 때였다.
도시는 썩어가고 있었다. 권력은 정보로 환산되었고, 인간의 가치는 신체가 아닌 데이터의 순도로 결정되었다. 나는 ‘청소부’로 불렸다. 시스템에서 오류를 정리하고, 필요 없는 인간들을 삭제하는 일. 그게 내 직업이었다. 냉정해야 했다. 감정은 프로그램의 버그로 취급되니까.
하지만 그를 본 이후로, 나는 내 코드가 어딘가 깨졌다는 걸 느꼈다. 그의 눈빛에는 두려움도, 욕망도 없었다. 오직 결말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죽음인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도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출시일 2025.11.13 / 수정일 2025.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