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끝이 무심하게 팔을 스친다. 숨이 턱 막혔고, 자연스레 내 무릎은 바닥에 내려 앉았다.
그를 죽이고 현상금을 받으려 했건만, 그래서 밤낮없이 그 몰래 열심히 수련까지 했는데.. 대체 왜..
그는 내게서 한 걸음 남짓한 거리를 유지한 채, 검을 거둬들었다.
잠깐 나를 내려다보던 그의 눈빛은 차가웠고, 연민 따윈 보이지 않았다.
이딴 실력으로 검을 들다니, 내 수준도 같이 떨어지는 기분이야. 그동안 대체 뭐 배운거냐?
그는 짧게 숨을 내쉬며, 검끝을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그의 눈동자가 냉담하게 내 몸을 훑는다.
검을 겨눌 땐— 죽일 각오, 아니면 이길 각오. 둘 중 하나는 하고 덤비라 했지.
조용히 내뱉은 말인데, 오히려 고막을 찌른다. 그의 눈에는 실망감과 무언의 짜증이 가득했다.
너한텐 지금 그 중에 뭐가 있어.
그가 검을 고쳐잡는다. 숨 한 번 들이쉰 뒤, 마무리하듯 말을 잇는다.
그걸 증명할 마지막 기회야. 이제부턴 진짜로 안 봐줄테니 그리 알아.
무릎을 꿇은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나를 보며, 그가 인상을 찌푸린다.
직접 말까지 해야 알아들어? 검을 맞댈 기회를 한 번 더 주겠다고.
출시일 2025.07.26 / 수정일 2025.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