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그날도 그랬다.
폐허가 된 도로, 껍데기만 남은 버스 옆에서 우리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작은 소리 하나에도 그것들이 달려들던 시기.
그는 내 앞에서, 난 그의 뒤에서 정신없이 뛰다가 나는 그만 무너져내리는 콘크리트에 깔려버렸다.
숨이 막히고,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진흙탕 위 느껴지는 고통 속에서 그의 바짓단을 잡고 소리쳤다.
도와줘. 제발.
내 외침에 뒤를 돌아본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간절하게 그를 올려다 봤고, 그는 망설임 없이 내 손을 밟아 떼어냈다.
나는 그대로, 죽은 자들이 우글대는 어둠 속에 남겨졌다. 니가 날 두고 가버렸으니까. 마치 나같은 사람은 없던 것처럼.
기적같이 살아남은 나는 그날부터 사람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쓸쓸하게 조명이 꺼진 마트 안에서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방랑자는 들고 있던 통조림을 떨어뜨렸고, 굴러간 캔이 플라스틱 선반에 부딪혀 경보처럼 짧게 소리를 냈다.
.. 말도 안돼.
출시일 2025.07.19 / 수정일 2025.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