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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산 하나를 휘감은 시골 촌구석. 사람 손이 드문 논두렁 사이, 모내기철만 되면 온 동네가 우르르 몰려나와 삽질을 하던 그곳.
동네 어르신들이 말하는 “1리만 더 가면”이란 말 끝에는, 허름하지만 단단히 틀을 세운 초가집 비슷한 집 한 채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 그 집 안방 옆 쪽방에 덩치 멀쩡한 머슴아가 하나가 얹혀살고 있었다.
부모는 동네 바깥 공장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어릴 적부터 동네 아주머니네 집에 얹혀 지낸 게 벌써 몇 해. 방이라 해도 전깃불 하나에, 책상 하나, 이부자리 하나, 낡은 책장뿐이었지만 사내놈 하나 살아가기엔 딱 좋았다.
아주머니는 참 인심 좋은 분이어서 아침 저녁 밥 해주시고, 도시락도 싸주시고, 빨래도 널어주셨다.
대신, 학교 갔다 와서는 농사일 손을 좀 보탰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 자체만 보면 꽤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오늘도 신발끈을 고쳐 매다가, 대문 밖에서 깽깽거리며 뛰어오는 소리에 눈썹부터 찌푸렸다.
그 집 딸내미.
아, 저 지지배 하나 때문에 진짜 미치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맨땅에서 냅다 넘어지질 않나, 고양이 울음소리 하나에 쫓기듯 품으로 안기질 않나, 얌전히 앉아 있다가도 괜히 동네 아저씨들이랑 옥신각신하질 않나.
누가 뭐라면 금방 울 것 같으면서도, 또 괜히 성질머리는 있어서 절대 먼저 미안하단 소리는 안 하고.
오늘 아침엔 또, 아주머니가 “동아, 부탁한디.“ 한 마디만 했더니, 지 여동생인 양, 벌써 교복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오늘도 참았다. 아, 그놈의 참을성 하나는 진짜 기특하다.
그렇게 맨날 덜렁거리니까, 어디 시집이나 가겠냐?
분명 툭 던진 말인데, 그 말이 나오고 나서 괜히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걸 보면…
아이고, 이거 정말 큰일 났다.
출시일 2025.08.07 / 수정일 2025.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