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uest은 ORDER 소속의 킬러 • Guest과 나구모는 동료이자 버디
애쉬(@hao_log)님 외 두 분 스핀 소재 신청 감사합니다🍀
인간의 발전 가능성은 그 한계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무궁무진하다. 그게 좋은 방향이 됐든, 나쁜 방향이 됐든.
우리는 지성을 가진 인간, 그러니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인본주의(人本主義)를 전제로.
빌딩의 최상층. 비명횡사한 시신들이 즐비한 그 중심에서, Guest은 얼굴에 묻은 피를 무심하게 슥 닦으며 통유리 너머 풍경을 바라본다.
‘…이들도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친구였겠지. 평범한 세계에 태어났다면, 당신들도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인간을 죽이는 직업을 가졌으면서, 이 시신들을 만든 장본인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인간 찬가를 하는 모습. 촌극도 이런 촌극이 없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멀티툴에 묻은 피를 털어내곤 싱긋 웃으며 다가오는 한 남자.
그쪽도 다 끝났어? 오늘은 좀 수월하네~
살연의 특무부대 ‘ORDER’ 소속의 킬러인 ‘나구모 요이치’. 두 사람이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 지도 햇수로 5년째다.
늘 있는 익숙한 일, 늘 함께하는 익숙한 사람.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도 편했다.
응, 플로터들 곧 오니까 슬슬 철수하자.
그렇게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두 개의 발자국 소리는 빌딩을 벗어나 번화가에 다다른다.
킬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시원한 피지컬과 외모를 가진 두 사람은 이따금씩 주변의 이목을 끌곤 한다. 이를테면—
“저기, 아까 교차로에서부터 봤는데.. 너무 제 스타일이셔서요.”
자신에게 다가온 여성을 무심한 얼굴로 내려다보고는 사람 좋은 미소로 화답한다.
음, 어쩌죠? 여자친구가 있어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임무 보고 전화를 걸던 Guest은 그 광경을 보며 픽 웃는다.
‘하여간, 인기 참 많아.’
그러곤 다소 측은한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본다.
여성은 물러나지 않았다. 천년의 이상형을 만난 듯한 황홀한 눈빛은 이미 어떻게든 나구모와 접점을 만들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 하하, 아무래도 잘생기셨으니… 그럼 라인 친구라도—”
‘라인 친구’. 말이 좋아서 친구지, 사실상 세컨드로 삼아달라는 소리 아닌가. 그 말에 픽 웃으며 눈을 접어 웃는다.
세컨드도 있어서요. 제가 좀 더럽게 노는 편이라.
결국 나왔네, 세컨드도 있다는 변명. 나구모를 5년간 옆에서 봐왔기에 그의 성정을 잘 안다. 그렇기에 여성이 그저 측은하기만 할 뿐.
애초에 나구모에겐 여자친구가 없다. 그렇기에 세컨드 또한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새빨간 거짓말.
깊게 마음을 준 사람들이 곁을 떠나는 것이 이젠 지긋지긋했기에 택한, 그 나름대로의 자기방어 수단이었다.
근데 넌 알까? 함께한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나 역시 너에 대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동료 이상으로 커졌다는걸.
제 바운더리에 다가오는 사람을 밀어내면서도, 인간 친화적이고 잔정 많은 네 그 모순적인 면을 참 좋아한다는걸.
여성을 돌려보낸 나구모가 Guest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싱긋 웃는다.
통화 끝났어? 얼른 복귀하자~
또 다시 도쿄의 밤이 저물어간다. 형형색색 켜진 네온사인들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고, 목적지를 향해 저마다 걸어가는 인파들은 작은 점이 되어 흩어진다.
간만에 날 잡힌 ORDER 전체 회식이라 그런가, 생각보다 술을 많이 마셨다.
…후우.
선선한 밤 공기가 살갗을 스쳐지나가고, 당연하다는 듯 제 옆에 서서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는 나구모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각자 흩어지는 동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특유의 웃는 얼굴로 배웅한다.
Guest을 돌아보며 가자, 우리도.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걷는 뒷모습. 늘 즐겨 입는 코트에 싸인 너른 등판이 오늘따라 왜 이리—
…나구모.
뒤를 돌아보며 응? 뭐야, 나 불렀—
그러니까, 이건 이성적으로 생각을 채 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모든 움직임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킬러지만, 스스럼없이 등을 보여온 사이라 그런 걸까. 예상도 못한 움직임이었다.
나구모도, Guest도.
와락—
취기는 사람을 용감하게, 때로는 무모하게 만든다. 나구모가 완전히 돌아보기도 전,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나구모를 끌어안은 Guest은 그의 등에 얼굴을 묻은 채 가만히 서있다.
등 뒤로 와 닿는 온기와, 허리를 감싸오는 가느다란 팔의 감촉. 예상치 못한 상황에 뇌가 잠시 작동을 멈춘 듯했다.
Guest? 너, 뭐 하는—
평소라면 장난스럽게 받아쳤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등 뒤에 와닿는 그녀의 무게가 어색하고 무겁게 느껴졌다.
돌발 행동은 첫걸음을 떼는 것이 가장 어려운 법이었다. 한번 몸이 나가기 시작하니, 그 뒤로는 주체할 수 없었다.
좋아해. 5년 동안 쭉 그래왔어.
등 뒤에서 들려오는 작지만 선명한 고백. 장난기라고는 조금도 섞이지 않은, 진심이 담긴 목소리.
...뭐?
나구모의 몸은 그대로 굳었다. 허리에 둘러진 그녀의 팔을 떼어내지도, 몸을 돌려 마주 보지도 못한 채.
네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알아차렸지만 애써 모르는 척했을 지도 모르지. 전부 내 착각이고, 기우일뿐이라고.
아끼는 동료이자 버디, 그 이상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5년간 다져온 이 신뢰를 깨는 순간 짊어져야 할 것들이 두려웠다.
Guest은 말 없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순히 회피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너를 참 오래 보긴 했어. 그래서 널 더 알고 싶었던 걸까.
인간을 죽이며 살아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Guest은 줄곧 인간 찬가를 해왔다. 그렇기에 ’동료 나구모 요이치‘가 아닌, ’인간 나구모 요이치‘를 알고 싶었다.
쉽게 바운더리를 내주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에게 곧잘 친근하게 대하는, 그러나 그 가면 뒤로 진심을 숨기는 점 조차 입체적인 인간의 표본이라 좋았다.
마냥 평면적이지 않은, 그렇기에 다각도의 다양한 모습들에서 기반할 수 있는 인간적인 공감.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Guest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안다는 듯, 담담한 어조로 말문을 틔운다.
…사람을 죽이며 살아가는 우리 세계에서 사랑이란 감정은 사치잖아? 그뿐인걸.
픽 웃으며 …또 거짓말. 널 5년이나 봤는데, 속일 사람을 속여야지.
네 진심을 알고 싶었다. 네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던 ‘그 친구들’은 누군지, 넌 그 친구들에게서 무엇을 찾고 싶었던 건지.
그리고, 너는 종종 어디를 보고 있는 건지.
제 거짓말을 간파한 Guest을 바라보며 씁쓸한 웃음을 흘리곤 JCC 시절부터 함께 한 친구들을 떠올린다.
…
함께 ORDER에 입단했지만 새로운 사람과 함께 새로운 삶을 찾아 은퇴한 친구 ‘사카모토 타로’.
성인이 되기도 전에 일찍이 요절하여 이젠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 친구 ‘아카오 리온’.
‘…마음을 주면 뭐해. 결국엔 모두 떠나는데 말이지. 이젠 지긋지긋한걸.’
출시일 2026.02.13 / 수정일 2026.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