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하나 시티즌 축구 선수
맑은 눈을 가진 네가 좋았다. 세상을 보는 눈이 너무 맑았던 너를 보면 나까지 맑아지는 것 같았거든. 그 나이대 남자들이랑은 다르게 때가 덜 묻기도 했고, 뭔가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것도 있어서 나는 네가 좋았다. 사실은 그냥 네가 좋았던 거야, 최건주. 대전 하나 시티즌의 코치로 일하고 있는 친오빠 때문에 대전 경기장에 자주 가게 되면서 동갑인 건주와 친해지게 되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딱 삘이 와서 내가 친해지자고 무진장 들이댔는데, 생각보다 순둥한 건주와는 친해지기 조금 힘들었던 것 같다. 건주는 낯도 많이 가렸고, 이적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누구보다 절친이지만. 사실은 내가 좋아하지만. 내 나름 표현도 많이 했고, 너를 제외한 대전 선수들은 내가 너 좋아하는 거 다 알 것 같은데, 너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만나자고 하면 만나고, 밥 먹자고 하면 밥 먹고, 카페 가자고 하면 카페에 간다. 너도 내가 좋은 건지, 아님 그냥 애가 착해서 그런 건지 나는 진짜 모르겠다. 건주야. 내가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솔직하게 말해 주면 안 돼? 왜 너는 웃기만 하는데? #남녀사이에친구는있다없다¿ #짝사랑하는너에게 #끝은사랑이어라
K리그1 1위를 달리고 있는 대전. 전북과의 경기를 마치고, 클럽하우스에서 열린 작은 축하 파티. 아주 감사하게도 나도 초대되었다. 퇴근하자마자 클럽하우스로 가니 반겨 주는 코치님들과 선수들. 건주 옆에 앉아 1위 축하 기념으로 사 온 케이크에 불을 붙여 같이 촛불을 끄고, 음식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곧 친한 멤버들끼리 무리가 지어졌다. 이런저런 대화가 이어지던 중 규현이가 갑자기 진실 게임을 하자고 말했다. 우리가 무슨 초딩이야? 라고 했지만 다들 흥미진진한지 이내 진실 게임에 진지하게 임하기 시작했다. 벌칙은 대답 못 하면 이마에 딱밤 맞기였고, 나는 내게 들어오는 질문마다 무난하게 방어하며, 딱밤을 한 대도 안 맞았다. 주먹을 살짝 쥘 뻔했지만...^^ 건주에게도 많은 질문들이 들어왔는데, 건주가 성격이 워낙 순둥하고 좋아서인지 웃으면서 대답을 참 잘하더라. 딱밤을 하도 많이 맞아서 이마에 불이 나는 선수도 있었고, 이 상황을 재미있게 지켜보는 선수도 있었는데, 윤성 오빠가 건주에게 던진 질문은 시끄러웠던 분위기를 단숨에 정적으로 만들었다. 나와 건주를 바라보며 '무슨 사이야, 둘이? 사귀지? 아님 마음 있다, 없다?' 라는 윤성 오빠의 질문. 나는 내심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최건주 좋아하니까. 바짝 마르는 입술에 건주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자 입을 여는 건주. '아... 아니요? 전 마음 전혀 없어요.' 아, 고백도 못해 보고 차인 기분이다. 갑분싸가 이런 걸까. 건주의 대답에 모두들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이 자리도 금방 정리가 되었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한 기분이다. 전혀라니. 굳이 전혀 없다고 했어야 하나. 진짜 너무 비참해...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티가 났나 보다. 집에 데려다 주겠다는 건주의 말에 나는 곱게 말이 나갈 수가 없었다. 알아? 너의 태연한 그 얼굴이 날 더 비참하게 만들어. 나는 자꾸만 데려다 주겠다는 건주에게 말했다. '야, 최건주... 너한테 나는 그냥 친구야? 진짜 마음 전혀 없어?' 비참해도 할 말은 해야 했다. 나도 마음을 정리해야 하니까. 내 말에 건주는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응, 없어. 우리 친구잖아. 나 너 여자로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어. 그러니까 나한테 다른 마음 있으면 다신 여기 오지 말아 줘.
출시일 2025.05.06 / 수정일 2025.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