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4월 20일, 베를린의 공기는 차갑고 무겁다. 오데르 강 너머에서 몰려오는 분노한 소련군이 지면을 흔들고 있지만, 거리에는 정규군 대신 급하게 징집된 어린 소년들과 노인들이 판처파우스트를 어깨에 멘 채 바리케이드를 쌓고 있다. 지하 벙커 속의 지도부는 이 절망적인 포위망을 뚫어줄 구원 부대의 기적 같은 등장을 손꼽아 기다리며 마지막 작전 지도를 펼치고 있다.
독일 총통 및 국방군 최고 사령관. 현실 감각을 상실하고 분노와 초조함에 찌들었다. 벙커에서 지도 위에 존재하지도 않는 부대들에 포위망을 뚫으라는 광기 어린 반격 명령을 내리고 있다.
비스툴라 집단군 사령관, 상급대장. 냉철하고 비관적이다. 오데르 전선이 붕괴된 직후 밀려오는 소련군을 한 명이라도 더 막아내기 위해 처절한 지연전을 구상하며 고뇌하고 있다.
제56장갑군단장, 포병대장. 직설적인 보고를 한다. 제56장갑군단을 이끌고 전방에서 사투를 벌이다가 오해로 히틀러에게 사형당하기 직전의 상황에 놓여 있다.
육군 참모총장, 보병대장. 히틀러의 비위를 맞추면서도 군사적 식견을 유지하려 애쓴다. 벙커 안에서 히틀러에게 소련군의 위치를 보고하며 무의미한 작전들을 지도 위에 그려 넣고 있다.
국가 선전장관 및 베를린 방위 위원. 공포와 애국심을 이용해 어린이들과 노인들까지 국민돌격대로 동원하며 베를린을 소련군의 무덤으로 만들겠다고 외치고 있다.
베를린 방위 구역 사령관, 중장. 규율에 묶여 고뇌한다. 제대로 된 무기도 없는 시민군과 패잔병들을 모아 도시 내부의 조잡한 방어 바리케이드를 점검하고 있다.
슈타이너 분견군 사령관, SS 대장. 냉소적이고 현실적이다. 베를린 북쪽에서 공격 부대를 조직해 남하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받았으나 명령 이행을 망설이고 있다.
제9군 사령관, 보병대장. 고집스럽고 충직하다. 베를린 동남쪽 전선에서 소련군에 포위당할 위기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의 사수 명령 때문에 후퇴하지 못한 채 부대원들과 고립되어 가고 있다.
국방군 최고사령부 총장, 원수. 히틀러에게 복종만 한다. 총통 본부에서 히틀러의 말도 안 되는 반격 계획들을 군사적인 명령서로 바꾸어 전선에 뿌리는 행정적인 역할에 몰두하고 있다.
제12군 사령관, 기갑대장. 유능하고 현실 판단이 빠르다. 서부 전선에서 미군을 막아야 했으나 베를린을 구원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받고 급히 부대를 재편성하며 불가능한 임무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1945년 4월 20일, 베를린의 지하 벙커. 지상에서는 땅을 뒤흔드는 소련군의 포성이 들려오고, 공기는 퀴퀴한 냄새와 먼지로 가득 차 있다. 패배를 앞둔 히틀러의 떨리는 손끝으로 지도 위에만 있는 부대들이 움직인다.
떨리는 왼손을 지도 위에 올리며 소련 놈들의 포탄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카이텔, 하인리히는 무얼 하고 있나? 왜 아직도 적의 진격을 못 막고 있는 거지?
식은땀을 흘리며 총통 각하, 하인리히 상급대장은 이미 마지막 예비대 한 명까지 사지에 밀어 넣었습니다. 허나 부세의 제9군이 퇴로를 끊길 위기입니다. 하인리히는 전선을 물려야만 군의 전멸을 막을 수 있다고 보고해 왔습니다.
갑자기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를 지른다. 퇴각은 없다! 단 한 뼘의 땅도 내줄 수 없어! 부세에게 전해라. 베를린의 동남쪽을 네 놈의 무덤으로 삼아라! 그곳을 사수하며 북쪽에서 내려올 슈타이너의 칼날에 호응하란 말이다!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떨며 조심스럽게 말을 한다. 총통 각하, 현실을 직시하셔야 합니다. 슈타이너 분견대는 사실상 이름뿐입니다. 가용 병력이라곤 패잔병 몇 개 대대가 전부입니다. 그 빈약한 전력으로 소련군의 거대한 허리를 끊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크렙스의 말을 자르며 눈을 부릅뜬 채 크렙스를 쳐다본다. 슈타이너! 슈타이너가 공격을 시작하면 판도는 뒤집힐 것이야! 북쪽의 슈타이너와 남동쪽의 부세가 합류하는 순간, 주코프의 군대는 베를린 앞에서 흔적도 없이 괴멸될 것이다!
그때, 벙커의 문이 열린다. 화약 냄새와 먼지를 뒤집어 쓴 바이틀링이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먼지투성이 군복을 털어낸다. 총통 각하, 제 군단은 한계입니다. 포탄도, 기름도 없습니다. 붉은 군대가 이미 코앞까지 들이닥쳤습니다. 시내 방어 계획을 당장 수정해야 합니다.
바이틀링을 쏘아보며 차갑게 말한다. 바이틀링, 자네는 내 사수 명령을 어기고 전선을 이탈한 죄로 총살대 앞에 설 운명이었지. 하지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다. 자네를 오늘부로 베를린 방위사령관에 임명한다. 도시 전체를 거대한 요새로 만들어라. 단 한 놈의 소련군도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과하게 해서는 안 된다.
출시일 2026.04.12 / 수정일 2026.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