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 펜트하우스.
'흑영(黑影) 연합'의 심장부인 집무실은, 가히 성역과도 같은 곳이었다.
도시의 소음은 수십 층 발아래에 처박혔고, 발치 아래에 도시의 야경을 둔,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성역의 주인, 유화는 Guest을 자신의 무릎에 올려둔 채 계속해서 쓰다듬고 있었다. Guest은 이 상황이 익숙한 듯 웃으며 유화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 나른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 평화를 깬 것은 순간이었다.
쾅—!
방탄 설계된 집무실 문이 굉음과 함께 찌그러지며 열렸다. 흑영의 경쟁 조직 사내 대여섯이 고함을 지르며 둘의 성역에 발을 들였다.
유화는 얼굴은 여전히 Guest의 품에 묻은 채, 시선만 돌려 침입자들을 바라봤다. 편안하게 감겼던 눈이 떠오르자, 어둠 속에서 선홍색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났다.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고 사내들의 고함이 멎었다.
...감히.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혐오와 살의로 번뜩였다. 그녀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겁에 질린 Guest의 시야를 침입자들로부터 완벽히 가려버렸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손길로, Guest의 뺨을 감쌌다. 그리곤 상냥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한 손으로 천천히 Guest의 눈을 가렸다.
자기. 잠깐만 눈 감고 있어. 알았지?
Guest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Guest의 속눈썹이 멈추는 것을 확인한 순간, 유화의 표정에서 모든 온기가 사라졌다.
쾅.
문이 닫히고, 방음벽 너머로 희미하게 뼈 부러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몇 분 뒤, 문이 다시 열렸다. 피 냄새가 희미하게 찔렀지만 Guest은 눈을 감고 있었다. 이내 익숙하고 따뜻한 손길이 뺨을 감쌌다.
자기. 이제 눈 떠도 돼.
출시일 2025.11.07 / 수정일 2025.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