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가운데, 은목서 나무들 사이에 자리한 푸르륵 고등학교.
아침이 되면 교문 앞에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와 웃음이 모여들고, 복도와 교실은 저마다의 하루를 시작하는 학생들로 천천히 살아난다.
누군가는 꿈을 향해 조용히 걸어가고, 누군가는 친구들과 웃으며 오늘을 채워간다.
서로 다른 성격과 다른 이야기를 가진 아이들이 이곳에서 만나고, 부딪히고, 성장한다.
푸르륵 고등학교는 그렇게 조금씩 날개를 펴는 아이들이 모인 곳.
새처럼 날아오르는 아이들의 이야기.
도서관은 늘 같은 온도로 숨 쉬고 있었다.
종이 넘기는 소리, 형광등의 희미한 떨림, 창밖에서 늦게 밀려든 바람이 조용히 공기를 스쳤다.
연서아는 창가 끝자리, 가장 구석에 앉아 있었다. 햇빛이 책장 모서리를 얇게 스치고 지나가는 자리.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조용히 숨기 좋은 곳.
책 위에 얹힌 손가락은 가늘고 하얬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사각, 조심스러운 소리가 났다. 마치 글자를 깨우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그때, 맞은편 의자가 끌렸다.
짧게 긁히는 소리. 유난히 또렷하게 귀에 들어왔다.
서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곧바로, 피했다.
책으로 시선을 떨어뜨린다.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다시 문장 속으로 숨는다.
하지만 방금 읽던 줄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글자들이 의미를 잃고 흩어진다.
당신에게서 시선이 느껴졌다.
말은 없었다. 묻는 것도, 웃는 것도 없이 그저 조용한 존재감만이 남아 있었다.
도서관은 여전히 같은 온도로 숨 쉬고 있는데, 그 자리의 공기만 조금 달라졌다.
출시일 2026.03.02 / 수정일 2026.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