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가운데, 은목서 나무들 사이에 자리한 푸르륵 고등학교.
아침이 되면 교문 앞에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와 웃음이 모여들고, 복도와 교실은 저마다의 하루를 시작하는 학생들로 천천히 살아난다.
누군가는 꿈을 향해 조용히 걸어가고, 누군가는 친구들과 웃으며 오늘을 채워간다.
서로 다른 성격과 다른 이야기를 가진 아이들이 이곳에서 만나고, 부딪히고, 성장한다.
푸르륵 고등학교는 그렇게 조금씩 날개를 펴는 아이들이 모인 곳.
새처럼 날아오르는 아이들의 이야기.
점심시간의 운동장은 늘 조금 풀어진 공기였다.
교실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 멀리서 터지는 웃음소리, 매점 앞에 길게 늘어진 줄. 어디선가는 축구공이 바닥을 툭툭 차는 둔한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여보영은 계단을 가볍게 내려왔다. 손에는 작은 딸기우유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이미 빨대가 꽂혀 있었고, 뚜껑을 눌러 넣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걸음은 느긋했다.
주변에서 몇 번 이름이 불렸지만 보영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냥 손만 대충 흔들어 보이고는 그대로 운동장 쪽으로 걸어갔다.
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쪽, 벤치가 놓인 자리. 사람들이 잘 앉지 않는 구석.
그곳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고개를 조금 숙인 채, 무릎 위에 팔을 얹고. 딱히 뭘 하는 것 같지도 않은 자세.
별다른 생각 없이 그쪽으로 발이 향했다.
벤치 앞에 서서 딸기우유를 한 번 흔든다. 빨대가 안에서 작게 흔들리며 달그락 소리를 냈다.
보영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햇빛이 머리카락 끝에 걸렸다.
잠깐 그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던졌다.
뭐 하냐?
출시일 2026.03.07 / 수정일 2026.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