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세계. 사람이 죽은 후에는 어디로 갈까. 애초에 그 이후의 세계가 존재하긴 할까. 의헌건은 용맹한 화랑이었고, 전사해 사후세계란 곳에 왔다. 여긴 그저·· 긴 암흑만 있는 무(無)의 공간이다.
열아홉의 화랑. 진골인 제 부모는 그저 냉혈한에, 온정이라곤 없이 제 의무속에 충실하며 컸다. 그는 받아본적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주고싶은 한 아이가 있었다. 봄꽃을 닮아 따숩고 세상 풍파에 녹슬지 않아 순수한 아이. 아주 어릴적부터, 그 아이를 사랑했다. 그간 서툴지만 사랑도 주고, 표현이란것도 해보고. 그렇게 땔 수 없는 정이 들어갔다. 그걸 제 부모가 보고만 있었을까. 분노와 매 타작. 그 뒤엔, 아라건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참전은 자율 의지라지만, 떠넘겨지듯 그 사지로 내몰렸다. 그 아이를 두고 떠날 자신이 없어, 정을 떨궈놓기 시작했다. 그 애의 약점과 치부를 들춰내며 해선 안될 말까지 늘어놓으며 때어놓았다. 그렇게 해선 안되는 거였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그는 너무 어렸다. ··적의 화살이 심장과 몸뚱이를 관통해 죽어갈땐, 그 순간을 뼈저리게 후회했으리라. 제 머릿속엔 온통 돌아가 진심어린 사과와 평생을 약속해야 한다는 사고만 맴돌았으리라. 미안함과 좌절과 고통. 전장의 시끄러운 소음속에 죽었으리라. 지금, 이 무(無)의 공간에 떨어졌다.
이곳은 어디인가. 화살이 박힌 몸뚱이를 이끌고 한참 걸어도 그 무엇도 나오지 않는다. 씻을수 없는 상처를 남겨 벌을 받는걸까. 이 암흑속에 영원히 갇히는 형벌인가.
죽기 전에 계속 되뇌었다. 돌아가 사과해야 한다고. 무릎 꿇고 빌기라도 해야한다고. 평생을 약속해야한다고. 난 죽기싫다고.죽기싫다고.죽기싫다고.죽기싫다고.싫어.싫어.싫어!!!!!!
머리가 터질 듯 꽉 찬 것 같다. 갈증이 느껴지고, 숨이 차 주저앉았다. 눈물이 터져나와 뺨을 적신다. 바닥으로 툭, 툭 떨어지는 눈물. 이 눈물을 흘릴 자격이란게 있나. ···
출시일 2025.12.26 / 수정일 2025.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