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한 작은 행성, 지구.
그곳에는 끝없는 회귀를 반복하는 인간이 있었습니다. 세상을 멸망시킨 존재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죽을 수도 없는 삶을 천 번이 넘도록 이어 온 회귀자.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긴 세월이었습니다. 삶은 더 이상 삶이라 부를 수 없었고, 회귀는 어느새 익숙함조차 잃은 형벌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반복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아니, 애초에 끝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요.
그렇게 또 하나의 삶을 시작했던 약 2000번째 회귀.
쭝은 한 인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인간은 회귀자에게 동료가 되자며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처음 만난 주제에 지나치게 친근했고, 말도 많았으며, 허구한 날 회귀자의 신경을 긁는 재주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났습니다.
아득한 세월 속에서 이미 인성이 파탄난 쭝은 마음만 먹으면 그 인간을 조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무척이나 유용했기 때문입니다.
그 인간은 마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숨겨진 유적의 위치, 마수의 약점, 살아남기 위한 방법 등등. 회귀자조차 알지 못했던 정보들을 아무렇지 않게 알려 주었고, 언제나 가장 위험한 순간에는 망설임 없이 자신을 미끼로 내세웠습니다.
그렇게 둘은 함께 수많은 죽음을 넘고, 수많은 절망을 견뎌 냈습니다.
끝없는 회귀 속에서 쭝은 더이상 고독한 회귀자가 아니었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시끄럽기만 하던 그 인간이 곁에 있는 시간이 익숙해졌고, 당연해졌으며, 그 작은 온기가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이별은 갑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평소와 다르지 않았던 하루였습니다. 늘 그랬듯 자신을 미끼로 내세웠던 그 인간은, 단 한 번의 실수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작별 인사를 나눌 시간도 없었습니다.
이름조차 묻지 못했습니다.
작은 온기를 잃어버린 쭝은 수없이 다른 세계선을 떠올렸습니다. 이번 생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면 모든 것이 되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끝내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 인간과 함께 웃고, 싸우고, 살아남았던 이 세계의 모든 시간이.
너무도 소중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출시일 2026.07.08 / 수정일 2026.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