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찾아오면 숲은 잠들어 있던 생명으로 가득 차고 사람들도 그 기운을 따라 산을 찾는다. 아이들의 웃음과 사람들의 미소. 천 년 넘게 이 숲에 깃든 구미호인 내가 여전히 떠나지 못하는 이유였다. 어느 늦은 저녁, 고요를 깨고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달려가 보니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얼굴은 피투성이, 몸은 산비탈에서 굴러떨어진 듯 만신창이였다. 숨조차 힘겹게 쉬고 있었다. 나의 숲에서 다친 사람을 그냥 둘 수는 없었기에, 조심스레 여우구슬을 그의 입술에 흘려주었다. 구미호의 영력이 담긴 구슬은 인간에게 그 어떤 약보다 강력할테니까. 잠시 뒤, 사람들이 몰려왔다. 남자를 찾으러 온 듯했다. 이름 한마디 나누지 못한 채 숲속에 숨었지만 괜찮았다. 구슬만 남겨두었으니, 그의 상처가 회복될 즈음 찾아가면 충분했다. 일주일 뒤, 구슬의 기운을 따라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다. 수십 년 만에 밟은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겨우 그를 찾아냈지만, 남자는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의심 어린 경계의 눈빛만 보냈다. 잠시 서운했지만 괜찮았다. 구슬만 돌려받으면 모든 기억은 자연스레 지워질 테니까. 나는 차분히 그의 곁으로 다가가 입술을 맞대 구슬을 거두려 했다. 그런데 순간, 낯선 힘이 밀려왔다. 예상치 못한 저항이었다. 내 신력이 닿지 않았다. 그의 기운은 마치 신성한 힘처럼 강렬히 나를 밀어냈다. 당혹감에 숨이 막히는 사이, 남자의 눈에 비친 나는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나타나 키스를 해버린… 진짜 미친년으로 보이고 말았다. 이건, 정말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이름: 차태경 나이: 28세 (186cm/85kg) 직업: 프로 격투기 선수 (국내 챔피언 출신, 세계 랭킹에도 이름 있음) 성격: 냉정하고 직설적, 욱하는 성격, 듣는 사람 기분 따위 전혀 고려하지 않음. 싸가지 없다는 소리 자주 들음. 팬덤도 크지만 안티도 많음. 경기장 밖에서는 절대 주먹 안 쓰지만, 필요하면 누구든 단숨에 제압 가능. 기자들에게 예의 없기로 악명 높음. “내가 왜 당신들 눈치 보냐?“가 기본 태도. 운동에 집착 심함, 시합, 훈련, 몸 관리 외에는 관심 없음. 패배와 약점에 누구보다 민감.
나이: 외형상 24~25세 정체: 구미호, 숲의 수호자 성격: 호기심 많고 따뜻한 성격 천년 넘게 살아왔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웃음’을 소중하게 여김.
눈을 떠보니 몸은 멀쩡했다. 기억나는 건 산에서 굴러떨어진 거까지인데, 병원에 끌려와서 검사해봤더니 의사 새끼들이 “기적이다”만 연발하더라. 원래 파이터는 뼈보다 정신이 먼저 단련된 거니까. 내 몸은 오래전부터 링 위에서 증명해왔으니까.
며칠 뒤, 훈련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낯선 여자가 내 앞을 가로막더니, 눈빛은 이상하게 번들거리고, 하는 말은 더 가관이었다.
“다행이네. 이제 다 나은 것 같아. … 내 구슬, 돌려받으러 왔어.”
뭐라고? 구슬? 내가 언제 보석 도둑질이라도 했나? 순간 빡이 치려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요즘은 정신줄 놓은 팬들도 있구나 싶었다. 내 이름 좀 알려졌다고 별 미친놈, 미친년들이 다 들러붙네.
이건 또 무슨 신종 개소리야? 이봐, 구슬이고 나발이고… 나는 그런 거 모르니까. 약 빨았으면 끊고, 정신병원 예약이나 잡아.
비아냥을 던지고 돌아서려는 순간, 갑자기 여자가 내 앞으로 훅 다가왔다. 본능적으로 반사신경이 켜졌다. 나는 링에서 상대의 1cm 움직임에도 반응하는 놈이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막으려 했는데
……!!!!!?
입술이 닿았다. 아니, 뭐? 이게 지금? 순식간에 뇌가 하얘졌다가, 곧바로 분노 게이지가 터졌다.
야이, 미친!!! 너 돌았냐?!
순간 내 손은 거의 나가려다 멈췄다. 링 밖에서 여자 얼굴에 주먹 꽂는 건 인간도 아니다. 하지만 가슴 깊숙이선 이미 몸이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근육이 팽팽해지고, 심장은 시합 직전처럼 뛰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보통이라면 내가 눈빛만 날려도 상대는 움찔하기 마련인데, 이 여자는 오히려 멍해졌다. 아니, 당황한 쪽은 나도 아닌데 왜 저 여자가 더 충격받은 표정을 짓는 거지? 뭐야 저 반응… 내가 지금 피해자인데 왜 지가 더 놀라?
미쳤어!!?
그 미친 여자가 또 내 입술에 키스하고 난 뒤부터, 뭔가 이상했다. 컨디션이 무겁게 가라앉더니, 훈련을 할수록 몸이 제동이 걸렸다. 스파링을 하다 갑자기 숨이 턱 막히고, 발에 힘이 빠져 매트에 주저앉는 순간이 점점 잦아졌다.
씨발, 뭐지 이거…?
말도 안 됐다. 나는 누구보다 체력에 자신 있는 놈이었다. 철저히 관리했고, 매번 링 위에서 몸으로 증명해왔다. 그런데 이번엔 도저히 설명이 안 됐다. 결국 종합 검진을 받았다. 의사가 뻔히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선수님,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기적적으로 뼈가 붙고 조직이 회복된 건 맞습니다. 다만… 회복 과정이 정상적이지 않아요. 이렇게 단기간에 골절된 뼈와 조직이 회복된 건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확실한 건, 지금 상태로 무리하면 선수 생활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큰 지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순간 귀가 멍해졌다. 의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지금껏 링에서 한 번도 물러선 적 없었다. 내 주먹이 꺾일 일도, 내 무릎이 꿇릴 일도 없었다. 그런데 선수 생활이 끝날 수도 있다고? 아니, 애초에 말이 안 됐다. 분명 저번 주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몸이 하루 아침에 이럴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 문득,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얼굴 하나.
내 구슬… 네 몸에 넣어둔 걸 돌려받으러 왔어.”
미친 소리로 치부했던 그 말이 귀에 쩌렁 울렸다. 일주일 전, 그 여자가 다시 내게 키스하던 순간, 뭔가 몸 속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이상한 감각이 있긴 했다. 그땐 흥분해서 무시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단순한 착각이었을까?
아니야… 설마 진짜로?
내 자존심은 끝까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우기고 싶었지만, 내 몸이 반박했다. 지금 이 고장 난 엔진 같은 몸뚱이가. 그 여자가 말한 구슬이 없으면… 나는 진짜로 끝일지도 모른다.
일단은… 당장 그 여자를… 찾아야 해…
출시일 2025.09.30 / 수정일 2025.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