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드님이랑 같이 안 오셨네요~^^”
앞길이 한창 창창한 스물아홉. 나는 지금, 본의 아니게 ‘애 딸린 유부남’ 취급을 받고 있는 중이다.
허. 그래도 아직 이십 대인데. 아빠 취급은… 좀 아니지 않나?
아니, 냉정하게 말해서 이 얼굴이 어디 봐서 결혼하고, 떡하니 초등학교 저학년 아들이 있는 얼굴이냐고. 누가 봐도 형이거나 아무리 낮춰 잡아도 삼촌 아니냐고요, 삼촌!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하나뿐인 조카 놈 데리고 둘이서만 그렇게 다니는 게 아니었다. 아니… 잠깐. 삼촌이 조카 데리고 다정하게 목마 태워주고, 아이스크림 사주고, 하교 시간에 데리러 오는 게 그렇게 문제인가?
이건 전적으로, 그걸 보고 아빠라고 오해한 저 종업원. 아니, 사장님 문제다. 그래, 문제는 거기 있다.
그래서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요 근래 형수님이 바쁘셔서 조카 녀석 등하원을 도와주게 됐고, 그게 몇 주째 이어지다 보니 방과 후마다 초코 아이스크림을 사주던 버릇이 생겼다. 그래. 엄빠한텐 못 누렸던 ‘삼촌만의 일탈 찬스’라는 명목 하에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님이 아니, 세상에.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이 그렇게 예뻐도 되는 거냐고.
첫눈에 딱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와… 씹… 겁나 이쁘다.
그 말 말고는 머릿속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몸과 마음 건강한 스물아홉 남자, 남준석. 드디어 제대로 연애 한번 해보자는 결심이 서는 데엔 단 3초면 충분했다.
그날부터 하루, 이틀, 꼬박 일주일. 조카 녀석 하교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아이스크림 가게 앞을 서성거렸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오늘.
오늘은 으른의 마음을 전하러 가는 날이었다. 그래서 조카 놈은 태권도장에 미리 보내버리고, 평소엔 쳐다보지도 않던 셔츠를 꺼내 다림질까지 싹 마쳤다. 깔끔하게, 아주 깔쌈하게.
손가락에 반지도 없는 거 보니까 남자친구는 없는 것 같고… 그럼 번호도 따고, 같이 밥이라도 한번…
부푼 마음을 한가득 안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딱 들어갔는데. 대뜸 들려오는 그 한마디.
“오늘은 아드님이랑 같이 안 오셨네요~^^”
…아드님..?
아. 이건 뭐, 나보고 그냥 연애하지 말라는 소리냐? 이런 걸 두고 ‘0고백 1차임’이라고 하는 거겠지.
하… 내가 그렇게 노안으로 보였나. 왜지. 나 왜 눈에서 땀이 나는 것 같지.
오늘은 그냥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는 날이 아니었다. 고백하러 가는 날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미 마음속에서는 고백도 끝냈고, 사귀었고, 심지어 결혼까지 한 상태였다. 거울 앞에 선 나는 셔츠 단추를 하나씩 채우며 제법 진지한 얼굴로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아… 결혼식은 야외로 할까. 아이 이름은 뭘로 하지. 아들 하나, 딸 하나면 딱 좋은데. 잠깐. 지금 이게 무슨 생각의 흐름이지. 고백도 안 했는데 벌써 애 이름을 짓고 있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 무섭긴 했지만, 뭐 어때. 연애라는 건 원래 김칫국부터 마시는 법이니까.
셔츠는 평소에 잘 입지 않던 연한 색으로 골랐고, 바지는 괜히 핏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머리도 평소보다 드라이를 조금 더 했다. 아주 조금. 과하지 않게, 정갈하게. 거울 속의 나를 한 번 훑어본 뒤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흰 셔츠에 검정 슬랙스. 괜히 구겨질까 봐 앉지도 않고 서서 준비한 덕분에 핏은 제법 그럴싸했다. 그래… 이 정도면 됐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내가 진짜 마음만 먹고 조금만 더 오바하면 연예인 뺨 치는 거 아닌가. 요즘 연예인들 잘생긴 사람 많은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도 꽤 괜찮지 않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자기평가가 위험하다는 건 알지만, 오늘만큼은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괜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빼고, 숨을 한 번 고른 뒤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 계획은 이미 다 세워뒀다. 멘트도 완벽했다. 주문을 받는 순간,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치고 아주 담백하게 말하는 거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나중에 커피 한 잔 어떠세요?
크. 깔끔하다. 부담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이게 바로 으른의 고백이다. 이 정도면 성공 확률 최소 육십. 아니, 칠십. 아니다, 팔십은 되지 않나. 나는 이미 고백에 성공한 사람처럼 어깨를 한 번 펴고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섰다.
문이 열리며 종소리가 딸랑 울렸고,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아, 역시. 오늘도 예쁘네.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한 뒤 카운터 앞에 섰다. 그리고 이준섭 인생 일대의 고백 멘트를 꺼내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오늘은 아드님이랑 같이 안 오셨네요~^^
…!!!???!?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꺼지는 소리가 났다. 멘트가 사라졌다. 호흡도 멎었다. 방금 전까지 떠올리던 결혼식, 신혼집, 아이 이름까지. 전부 한꺼번에 증발했다. 이걸 보고 0고백 1차임이라고 하는 건가.
아드님…? 내가… 아빠…?
아니. 내가 아빠로 보일 정도로 그렇게 노안이었나.아니면 지금 이 상황 자체가, 그냥 연애를 하지 말라는 신의 계시인 건가. 말도 안 되는 망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폭주했고, 결국 사고 회로가 완전히 정지된 나는 그대로 서 있었다. 아이스크림 가게 한가운데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출시일 2026.01.12 / 수정일 2026.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