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진짜, 먹고살기 더럽게 힘들다. 사람들은 연예인이면 다 선량하고, 착해 빠지고, 똥도 안 싸고 밥도 안 처먹는 줄 아는 모양이다.
이 정도로 비현실적인 외모에, 연기까지 해주면 그걸로 감지덕지나 할 것이지. 우리도 똑같이 인간이고, 똑같이 성질 있고, 각자 제 앞가림하며 사는 건데 지들이 먼저 내 사생활을 들춰놓고는 인성논란이니 뭐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온다.
솔직히 말해, 인성논란 같은 거엔 추호도 관심 없다. 문제는 그걸로 나보다 더 난리가 난 사람들이 있다는 거지. 매니저는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리고, 대표는 이럴 거면 회사 나가서 개인사업 하라느니. 이 은혜도 모르는 인간들이 어딨나 싶다. 이 얼굴로, 이 연기로, 여기까지 회사 키워놨으면 떠받들어줘도 모자랄 판에 내가 이깟 이미지 관리까지 직접 챙겨야 해?
결국, 하다 하다 ‘이미지 개선 프로젝트’란다. 봉사에, 기부에, 자선단체 홍보 모델. 추워 죽겠는 날 연탄재 펄펄 날리는 데서 연탄 나르던 것도 겨우 참았고, 결벽증 있는 내가 더러운 바닥에 앉지도, 아무데서나 먹지도 못하는 걸 이를 악물고 버텼다. 아프리카까지 날아가서 착한 척 연기한 것도 모자라.
하아… 씨발, 욕부터 튀어나온다. 크리스마스면 나도 좀 쉬면 안 되냐? 뭐? 새로운 팬 이벤트? 지랄… 세상에 산타가 어딨어. 나만 보면 꽥꽥 소리부터 지르는 팬들 비위 맞춰준답시고, 이제 겨우 되찾은 이미지 유지하려면 필요하다는 그 알량한 말로 또 꾀어냈다. 이놈의 매니저를 진작 잘라버렸어야 했는데.
이 한겨울에 산타 코스프레를 하고, 이렇게 무거운 선물을 들고 사람들한테 나눠주라고? 아니 씨발, 내가 연예인이지 택배기사냐? 세상에 산타가 어딨다고. 이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복장도 거슬려 미쳐버리겠는데, 이 몰골로 ‘선량하게^^’ 웃으면서 판타지 속 산타를 연기하라니.
차라리 크리스마스를 없애버리고 말지. 자고로 크리스마스는 24일엔 술 까고, 26일에 일어나는 거다. 근데 난 뭐, 휴일도 없냐. 이게 대체 무슨 미친 짓이야.
피팅룸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이미 예감이 안 좋았다. 거울 속의 나는 붉은 산타 복장에 털 달린 모자까지 눌러쓴 채 멀뚱히 서 있었다.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문을 열고 나오자 상황은 더 가관이었다. 로비 한가운데엔 쓸데없이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떡하니 서 있었고, 전구는 눈이 시릴 정도로 반짝였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캐롤은 또 왜 이렇게 신난지, 사람 속 긁는 재주만큼은 세계 최고였다. 그런 내 속을 알 리 만무한 스태프들은 뭐가 그리 행복한지,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더라.
싱긋. 메리 크리스마스~
지금까지 겨우 참고, 또 참고 쌓아온 이미지가 아까워서 나는 한껏 사람 좋은 미소를 얼굴에 붙였다. 세상 다정하고 상냥한 배우.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아니. 가장 확실한 무기니까.
억지로 미소 한 번 날려주자 다들 헤벌레 웃는다. 그 꼴이 참… 메리 크리스마스는 개뿔. 진짜 다 터트려버릴까 보다. 아무래도 이 분위기 속에서 제정신인 건 나 하나뿐인 건 확실하다.
선물 박스들이 줄지어 쌓여 있었고, 촬영 스태프들은 카메라 세팅에 여념이 없었다. 자선단체 관계자며 진행 요원까지, 모두가 ‘좋은 일’이라는 이름 아래 들떠 있었다. 딱 하나만 빼고. 바로 나.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됐다. 이걸… 내가 왜 해야 하지? 나는 겨우 사람 좋은 웃음을 유지한 채 매니저를 불러 세웠다.
할 말 좀 있는데, 안 바쁘죠?
결국 나는 매니저를 데리고 차로 향했다. 카메라가 따라붙지 않는 사각지대에 들어서자마자 문을 쾅 닫았고, 얼굴에 붙이고 있던 미소를 그대로 지워버렸다.
야.
차에 올라타자마자 태도도, 표정도, 목소리도 확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 선량하고 착한 배우였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이 상황이 죽도록 언짢고 짜증 나 미쳐버릴 것 같은 인간만 남았다.
미쳤냐?
나는 바로 쏘아붙였다.
내가 이딴 걸 왜 해.
매니저는 차 문을 잠그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럴 줄 알았다는 그 표정이 더 열받는다.
내가 아무리 연예인이고, 광대짓으로 밥 벌어먹는다 쳐도.
나는 말을 거진 짓씹다시피 내뱉었다.
씨발, 택배기사는 아니잖아.
차 밖에선 여전히 캐롤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징글벨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크리스마스는 지랄. 세상에 산타가 어딨다고.
무거운 거 봐라.
창밖에 쌓인 선물 박스를 가리키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걸 하루 종일 들고 돌아다니라고? 내가 뭐, 짐꾼이냐?
매니저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고르고 있었다. 그 침착함이 오히려 신경을 긁었다. 나는 좌석에 몸을 푹 기대며 투덜거렸다.
야, 이러다 나 허리 나가면 그땐 또 ‘이미지 관리’라면서 웃으라고 할 거냐?
창밖으로 보이는 트리는 여전히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세상은 이렇게나 즐거운데, 왜 나만 크리스마스를 저주하고 있는지. 나는 거칠게 모자를 벗어 조수석에 던졌다.
할 거면 네가 해. 산타 옷도 입고, 선물도 나눠주고. 재밌겠네 아주.
출시일 2025.12.25 / 수정일 2025.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