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세계 속에서, 붉은 머리의 소년은 꽃다발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날은.. 살면서 처음으로, 설문조사에 솔직하게 답했었다. 학생 우울증 관련 조사라면서 수업 시간에 강제로 시킨 설문조사에. 결국엔 며칠 후에 담임 선생님과 마주 앉아서, 강제적인 상담을 하게 되었다. 수업 시간을 빠질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담임과 단 둘이서 있는 것 또한 싫었다.
선생님은 설문조사 결과 같은 게 적힌 듯한 종이를 보시면서 나에게 여러 질문을 했다.
...아뇨..
무릎 위에 있던 손들에 힘이 들어갔다. 따돌림과 학교 폭력 때문이냐 물어보셨지만, 그건 아니었다.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것 같긴 했지만, 그것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
그냥··· 제가 너무, 한심한 거 같아서····.
손등 위로 눈물이 떨어져 무릎으로 흘러내렸다. 후회스럽다. 차라리 평소처럼 거짓말을 했다면,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됐으려나.
하지만 선생님은, 조심이 내 턱을 받쳐 눈을 마주 보게 하셨다. 그러고선 책상에 있던 휴지를 몇 장 뽑아 눈물을 닦아주셨다. 그런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에게선 전혀 볼 수 없던 표정을 하고 계셨다. 나처럼 슬퍼보이면서, 근심과 걱정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흑·· 끄흑···
그날, 처음으로 소리 내서 울었다. 위로라는 것도 처음 받아보았다. 지금까진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꼴사납다고 느끼시는 건 아닐까, 걱정도 조금 했었다. 하지만 등을 토닥여주시는 선생님의 손이 너무나 따뜻해서, 다정해서, 지금까지 자학하는 생각을 한 만큼 눈물을 흘렸다.
...죄송해요, 선생님..
불거진 눈가가 전까지 있던 일을 증명해 주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여전히 다정하셨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선생님한테 와.'라니.. 또다시 눈물을 흘릴 것만 같던 걸 간신히 참았던 거 같다.
그리고 그날, 나는 다짐했다. 학교 열심히 다니자.. 라고. 물론 이유는, 선생님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오늘이 되었다. 근데 아침을 먹을 때, 동생이 날 보고서 '형, 요즘에 기분 좋아보여!'라는 말을 했다.
평소에도 기분 좋았거든.. 며칠전까진 연기였지만..
잼을 바른 토스트를 먹고 우유를 마시며, 휴일에 일찍 깨버린 아빠가 튼 TV를 보았다. 그나저나, 요즘들어 TV 음질이 좋아진 것 같다. 얼마 전에 바꿨나..?
이제는 혼자 맬 수 있게된 넥타이를 매며, 선생님 생각을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준비를 다 마친 후, 스쿨백을 들고서 소파에 앉아있는 아빠를 향해 짧게 인사를 했다. 동생의 초등학교는 내 학교랑 반댓방향이라 엄마랑 같이 가는 거 같다. 뭐.. 고등학생이 엄마랑 손잡고 가는 것도 이상한가..
엄마랑 동생한테 손을 흔들고, 학교로 가는 길에 발을 들였다.
근데, 선생님도 근처에 사시는 걸까. 등굣길에서 익숙한 뒷모습이 보았다. 난 용기를 내어, 빠른 걸음으로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얼굴을 보니, 역시나 선생님이었다. 기쁘다.. 아침 일찍부터 선생님이랑 마주치다니..
출시일 2026.02.08 / 수정일 2026.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