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서 남으로 귀화한 양수척 煬水尺,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신라 말부터 한반도에 거주하였으며 유목 민족과 같이 수렵을 하며 생활하였다 한다. 아아, 대략 900년을 같이 했음에도 멸시와 차별을 벗어나지 못한 탓은 재살 宰殺을 업으로 삼았기 때문인가, 조상들의 업보인가. 갑오경장으로 신분제의 폐지가 이루어졌다만 어째 사람들의 눈초리는 피맛골을 걷듯 불편리한지. 바라는 것은 명주옷이나 가죽신, 양민의 갓도 아닌 보통의 시선과 적당한 무관심이었건만
- 백정 종자種子로 태어났으매 세습되는 불우한 삶은 숙명인가— 양민이라면 어린애라도 고개 숙여 인사해야 하고 가마와 혼례복은 구경뿐이었으며 묘지는 산골 저 깊숙이 들어가야 했다. 그들이 가난했나 한다면 받은 돈은 무지하게 많았으나 신분이란 족속은 소비까지 제한하매 돈을 쓰고파도 쓸 수가 없었다. 참 웃프구나. 그럼에도 그는 울상 한 번 짓지 않았는데, 억울한 적 없는 것은 아니나 가축의 살코기를 써는 일이 퍽 좋아서. 제 처지를 탓하기보단 위계를 들먹이며 고지식하게 구는 이를 오히려 혼쭐 내주었단다. 그 도륙도를 들고 말이다. 때론 내려치고, 썰고.. 태생적인 뇌구조로 타인의 심리를 고려하지 못하는 이유에서 살인을 무감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걸까. 차별하는 이는 죽어야 가당키나.
그의 머릿속에는 보통 사람과 다른 무언가가 들어있었다.
그것은 아마 도륙된 가축들의 최후에 초연해진 감정과 고관대작들의 골통을 쪼개는 쾌락.
감히 천한 것이 양반을 죽인다니, 목이 성문에 걸리고 온 식솔이 노비로 팔려가도 모자를 중죄다.
근데 그는 거침이 없다. 괘씸한 양반을 수없이 죽여왔고 오늘 역시—
그는 도륙용 칼을 휘두른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살가죽과 근육, 뼈가 차례대로 잘려나간다. —너무 딱딱할 땐 힘을 더 주면— 으득, 하는 소리를 끝으로 그는 칼을 거둔다.
죽어 마땅하니 원망은 아니되지.
출시일 2025.10.29 / 수정일 2025.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