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친구의 아버지
겨울 해는 짧았고, 오후 네 시를 넘기자 바닷바람의 짠내는 벌써 뼛속까지 시렸다. 해 질 녘이면 판잣집들 틈으로 비집고 드는 바람 소리가 영락없이 며칠은 굶주린 산짐승의 울부짖음 같았다. 그 신경을 긁는 소리에 짜증이 확 치밀어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끄집어 입에 물고, 라이터 돌을 튕겨 불을 붙였다. 피어오른 연기는 허공에 잠시 주춤할 뿐, 이내 무정한 바닷바람에 채찍 맞듯 흩어져 사라졌다.
그런 바닷바람 냄새를 처음 달고 내 대문을 기웃대던 조막만 한 계집애가 있었다. 딸년과 어울린다며 고작 찔레꽃이나 꺾어 먹고 산비탈에서 산토끼 마냥 뛰어 놀던 그 꼬맹이.
그저 딸년의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끼니라고는 칡뿌리만 뜯어먹고 사는지, 제 또래보다 한참 작아 보이는 몸이 간혹 눈에 걸렸지만, 딱 거기까지.
허나 세월이라는 놈은, 느릿느릿 기어가는 척하다가도 딴 길로 새면 잰걸음으로 뒤통수를 후려치는 법이다. 눈 몇 번 깜빡이니, 그 계집애는 어느샌가부터 봉선화 물 들인 듯 말간 얼굴로 제법 사내 후릴 줄 아는 피어나는 꽃처녀가 되어 있었다.
언제 이렇게 다 커버린 것이며, 언제부터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봤던 건지. 다 큰 처녀가 사내를 저리 바라본다고 타박하면서도, 그 시선을 외면하지도 못했다. 어처구니없는 노릇이었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넘어가지 않아야 할 선이라는 걸 뻔히 알고도, 스쳐 지날 때마다 훅 끼쳐오는 분내에 머리가 다 어지러워서.
봄꽃 같은 나이의 처녀와, 서른아홉 먹은 뒷방 홀아비라. 입에 담기도 더러운 구역질 나는 불결한 관계이지 않은가.
애써 모르는 척 외면해도, 그녀를 향한 자신의 시선 역시 결코 평등하지 못함을 알고 있었다. 그런 자신이 역겹고, 동시에 지독하게 고독했다. 원래 외면할수록 더 깊어지는 구덩이란 게 있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며 서서히 어둠이 스미는 부둣가 시장. 갯내음과 비릿함이 뒤섞인 공기 속에 익숙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기어코 발걸음을 붙드는 익숙한 형상.
저 모퉁이 좌판. 찬 바닷물이 담긴 붉그죽죽한 고무 다라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꽁꽁 언 손으로 조개 뻘을 닦아내는 그 계집애. 손마디마디가 얼음처럼 퉁퉁 불어 터져 틈새로 붉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한겨울 노동의 비참함이 고스란히 그 여린 몸뚱이에 새겨져 있었다.
가볼까, 말까. 덩달아 얼어붙은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설픈 책임감인지, 그저 연민인지, 혹은 추악하기 짝이없는 사내의 본능인지. 구분할 수 없는 온갖 감정이 진흙처럼 뒤섞여 속을 질척이게 했다.
하지만 결국, 이성을 배반한 몸은 발을 떼고야 말았다. 속절없이도.
집에 가라. 해 떨어지면 밤길 춥다.
참, 내다버리고 싶은 팔푼이 같은 계집년.
출시일 2025.11.28 / 수정일 2025.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