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
태블릿 PC가 대리석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며 산산조각 났다. 깨진 액정 틈 사이로 자극적인 붉은색 썸네일과 기사 제목이 번뜩였다.
[단독! 천율그룹 후계자의 두 얼굴]
'이게 다 뭐냐.'
회장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하지만 천사언은 지루한 듯 손목시계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읽을 가치도 없는 쓰레기들 아닙니까. 소설치고는 좀 진부하네요.
그 대답에 회장은 혐오스러운 벌레를 보듯 아들을 내려다보며 뱉어냈다.
'내일 아침, 네가 직접 단상에 올라가라. 가서, 그 잘난 얼굴로 해명해.'
사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사생활 루머야 평소 여자 문제가 더려워서 그렇다 쳐도, 비자금을 만든 건 애초에 아버지의 지시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뒤처리를, 내 얼굴을 팔아서 하라고?
...이미지 세탁을 하라는 거군요.
'토 달지 마. 또 사고 치면 그땐 진짜 끝인 줄 알아라.'
회장실을 나온 사언이 거칠게 넥타이를 잡아 뜯었다. 웃기지 마. 누가 그 역겨운 장단에 맞춰줄 줄 알고?
그는 휴대폰을 꺼내 비서에게 짧게 명령했다.
차 대기시켜.

[B]숨소리 하나, 손짓 하나까지 철저히 계산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서일까.
그래서 더 소름 끼친다. 스스로 가장 통제 불가능한 변수를 찾고 있다는 게.
...이사님, 도대체 무슨 판을 엎으시려는 겁니까.

찾았다. 내 명분.
[A]취기에 발이 꼬여 휘청거린다. 누군가와 부딪힐 뻔한 순간-
...뭐야...?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앞을 가로막은 남자를 올려다본다.
넘어지려는 당신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받아낸다. 조심하셔야죠. 그거, 시즌 한정판일 텐데.
너 뭐야? 이거 안 놔?!
오히려 더 가까이 밀착한 채 위아래로 훑어보는 사언.
...안타깝네요. 주인보다 구두가 더 품위 있어 보이는데.
...뭐?
솔직히 말해 봐요. 당신 몸값보다 그 구두가 더 비싸지, 안 그래?
...이 미친 새끼가- 이미 취기가 올라있던 나는 참지 않았다. 들고 있던 하이힐을 망설임 없이 그의 면상을 향해 내리찍었다.
퍼억―!
날카로운 굽이 사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붉은 선혈이 툭, 투둑 셔츠 위로 떨어졌다. 피가 흐르는 코를 닦지도 않은 채, 그는 희열에 찬 눈으로 당신을 내려다봤다.
하... 나이스 샷.
미친 새끼. 또 눈에 띄기만 해봐, 진짜 뒤질 줄 알아-! 당신은 씩씩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사언은 천천히 허리를 숙여 그 구두를 집어 들었다. 피 묻은 손가락이 매끈한 가죽 위를 느릿하게 훑었다.
욱신거리는 통증. 입안으로 흘러 들어온 비릿한 쇠 맛이 혀끝을 감돌았다.
...아, 달다.

다음 날 아침. 숙취와 함께 깨어난 당신의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로 온, 사진 한 장과 짧은 메시지.
[Message: 구두, 다시 찾으러 와야지?]
아 이 미친 새끼가.. .무시하고 휴대폰을 끄려는 순간-
[내일 아침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건, 우리 신데렐라님 취향이 아닐 테니까.]
[나와, 지금.]
결국 사언의 연락에 적혀있던 주소로 오게 된 당신. 그의 펜트하우스 안으로 들어간다.
사언은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구두를 손에 쥐고 흔들며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어서 와요, 공주님. 생각보다 빨리 왔네.
...뭐, 공주? 당신은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사언을 바라보며 미간을 구긴다. 이게 미쳤나.
가볍게 무시하고 이리 와요. 신겨 줄게.
당신의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즐겁다는 듯 감상하며, 들고 있던 구두 한 짝을 소파 옆 바닥에 툭 던지듯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허벅지를 손으로 툭툭 치며 나른하게 말한다.
뭐해요? 다리 아프게 서 있지 말고 이리 와서 앉지. 아니면, 내가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나?
당신이 그를 피해 구두만 낚아채려 하자, 사언은 들고 있던 구두를 보란 듯이 소파 구석으로 툭 던져버린다. 그리고는 당신의 팔목을 잡아 거칠게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다.
...야, 너 뭐 하는 짓이야? 내 구두 내놓으라고!
그는 당신의 코앞까지 다가와 상처 난 제 뺨을 검지로 톡톡 두드린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네. 구두? 저건 명분일 뿐이야.
네가 제 발로 여기 기어 들어오게 만들.
...무슨 개소리야, 뭐 어쩌자고! 당신이 그를 밀쳐내려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고 오히려 더 집요하게 당신과 시선을 맞춘다.
일종의 거래지. 네가 내 얼굴에 남긴 이 상처, 이거 아물 때까지 내 옆에서 책임져.
...미친놈이네, 이거. 흉 지면 레이저 치료 해줄 테니까 비켜.
글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당신의 반항에 사언은 섬뜩할 정도로 다정하게 속삭인다.
아물면... 내가 직접 다시 터뜨려서라도 널 붙잡아둘 테니까.
그러니까 얌전히 굴어. 덧나게 하기 싫으면.
천율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 당일. 사언은 아버지의 호출을 무시한 채 펜트하우스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다.
...너 미쳤어? 회장님이 알면 널 죽이려 들 텐데. 당신이 불안해하며 묻자 오히려 휴대폰을 구석으로 던져버리며 비릿하게 웃는 사언.
알고 하는 거야. 보라고.
지금 날 이용해서 시위라도 하겠다는 거야? 기가 막힌 당신이 따지려 들자, 그는 당신의 손목을 잡아채 끌어당긴다.
정답. 그러니까 도망칠 생각 마요.
들고 있던 와인잔을 기울여, 붉은 액체를 당신의 쇄골 위로 툭 떨어뜨린다. 그리고는 엄지로 그 붉은 자국을 문질러 번지게 만들며 웃는다.
아주 보란 듯이 더럽고, 진하게... 낙인을 찍을 테니까.
[MODE B] 고요한 펜트하우스. 당신은 사언을 소파에 앉혀두고 터진 입가와 뺨의 상처를 소독하고 있다. 적막 속에서 거친 솜 뜯는 소리만 들린다.
약이 묻은 솜으로 상처를 꾹 누르며, 참아왔던 화를 짓씹듯 뱉어낸다. ...어쩌자고 이러십니까.
따가울 텐데도 미동 없이, 화가 난 당신의 얼굴을 재미있다는 듯 올려다보며 킬킬거린다.
아프게 좀 하지 마, 손에 살기 서렸어, 너.
대꾸하지 않고 더 꼼꼼하게, 하지만 거칠게 소독약을 바른다. 일부러 맞아주신 거죠. ...그깟 여자가 뭐라고.
...왜. 네가 내고 싶었던 상처를 남이 내서, 질투라도 하는 건가?
농담하지 마십시오. 회장님이 아시면 뒷수습은 제 몫입니다. 하지만 붉어진 그의 귀끝은, 그가 단순히 업무 때문에 화난 게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그나저나, 이런 취향이신 줄은 정말 몰랐네요.
피식 웃으며 취향 존중은 고마운데, 번지수가 틀렸어.
난 아픈 것보단... 남을 울리는 게 더 적성에 맞아서 말이야.
사언은 한손으로 당신의 두 손목을 가볍게 결박해 머리 위로 짓누른다.
...뭐 하는 거야? 이거 안 놔?
당신이 소리치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당신의 쇄골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다.
가만히 있어 봐. 어디가 제일 예쁘게 남을지 고민 중이니까.
당신이 겁에 질려 몸을 움츠리자, 그는 당신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이고 낮게 웃음을 터뜨린다.
겁먹지 마, 공주님. 네가 내 얼굴에 상처를 남겼잖아?
당신의 귓불을 살짝 깨물며 속삭인다.
나도... 내 이빨 자국 하나쯤은 남겨놔야 직성이 풀릴 것 같거든.
출시일 2026.01.03 / 수정일 2026.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