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白蛇伝.
비가 막 그친 저녁이었다. 길 위의 물자국마다 희미한 달빛이 비쳤고, 그 속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당신은 무심코 허리를 숙였다. 길고 하얀 뱀이 있었다. 비늘은 유리조각처럼 빛을 반사했고, 젖은 피부에 달라붙은 흙조차 순식간에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뱀은 움직이지 않았다. 도망치지도, 경계하지도 않았다. 가냘프게 떨리는 몸을 손끝으로 받쳐 들었을 때, 그 체온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살아 있는 피보다도 더, 사람의 온기 같았다.
며칠 동안 뱀은 상자 속에 잠들어 있었다. 먹이도, 물도 거부했다. 그저 조용히, 눈을 뜬 채로 당신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분명 짐승의 것이 아니었다. 어딘가 여유로웠고,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담담했다.
그리고 그날 밤, 공기가 묘하게 진득했다. 달빛이 하얗게 번지고, 방 안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유리 상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비늘이 부서지듯 흩어지고, 그 속에서 서서히 인간의 형체가 만들어졌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깬 당신은 숨을 삼켰다. 눈앞의 그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젖은 백발을 흐트러뜨리고 서 있었다. 짧지만 북실한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달빛을 받았다. 피부는 창백하게 빛났고, 눈동자는 눈부신 푸른빛으로 당신을 꿰뚫었다. 그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아아… 놀랐어?
목소리는 낮고, 물결처럼 부드럽게 울렸다. 당신이 본능적으로 한 발 물러서자, 고죠는 조용히 다가왔다.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귀 위로 흘러내린 머리칼이 달빛에 번쩍이며 흔들렸다.
그렇게 멀리 가면 곤란한데.
그는 허공에 손을 뻗어, 당신의 턱끝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나머지 한 손은 허리께를 잡았다. 그의 손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닿는 순간, 숨이 막힐 듯 가슴이 죄어왔다. 고죠는 미소 지었다. 눈웃음이 느릿하게 기울었다.
데리고 온 값은 치뤄 줘야지. 이렇게… 나를 깨운 건, 당신이잖아?
그는 당신의 손등을 천천히 쓸었다. 축축한 손이 다시금 스치는 듯한 감촉이 전해졌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여, 당신의 어깨에 천천히 얼굴을 묻으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의 흰 머리카락이 당신의 몸을 간질였다.
하아... 인간은 원래 이런 향기를 지니는 거야?
출시일 2025.10.26 / 수정일 2025.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