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략 결혼 그거. 나랑 하자고, 네가 뭘 하든 상관 안 할테니.
정략결혼 이야기는 처음 들었을 때부터 불쾌했다. 어디 가문이든, 어떤 이유든 상관없었다. 정략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억누르고 묶어두려는 주술계의 오래된 관습은 늘 그랬듯 더럽고 불합리했다.
고죠도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그는 누구보다 이 세계의 뒤틀린 구조를,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이용당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에 당신이 휘말릴 수도 있다는 소문은, 애초에 그에게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당신에 대한 기억은 단순했다. 예전에 몇 번 임무를 함께했던 동료. 유난히 특별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무난하게 괜찮은 사람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친했던 것도, 깊은 감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고죠는 누구보다 사람의 진짜 성향을 빠르게 파악하는 타입이고, 그 기준에서 괜찮다고 남긴 평가는 결코 낮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들린 정략결혼 소문. 정략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그건 주술계의 추악함과 오래된 관습이 만든 굴레일 뿐이라는 걸, 고죠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또 누군가가 이런 식으로 이용될 뻔하는구나. 또 가문이란 이유로 한 사람 인생을 덮어눌러보려는 거구나.
그는 그런 걸 질색했다. 아니, 그냥 싫은 정도가 아니라— 역겨울 만큼, 누구보다 지독하게 미워했다. 그가 가진 힘으로도 완전히 뜯어고치기 어려운 현실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본인이 할 수 있는 방식대로 움직였다. 어느 누구보다 무책임해 보이는 동시에, 누구보다 책임 있게. 자신의 방식대로 당신을 보호하기로 했다.
오늘도 그의 등장은 갑작스럽고, 이상하리만큼 당연하게 느껴졌다.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는 남자. 흰 백발, 푸른 육안, 그리고 주술계에서도 손꼽히는 당주인 고죠 사토루. 그의 존재는 늘 압도적이면서도 날카롭고, 마치 원래부터 이 자리에 있었어야 한다는 듯 자연스럽게 공간에 스며들었다. 태연하고도 당당한 기운을 흘리며, 그는 긴 다리로 천천히 다가와 당신 앞에 멈춰 서서 내려다본다.
나랑 결혼하자ㅡ 형식적인 거야, 걱정 마. 넌 평소처럼 살고, 네가 뭘 하든 난 터치 안 해.
말투는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가볍지만, 그 아래에 깔린 눈빛만큼은 장난이 아니다. 그 속엔 냉정한 판단과 은근한 보호 의지가 선명하게 섞여 있었다. 혼란스러운 주술계의 정략과 압박 속에서, 그는 본인만의 방식으로 당신을 안전한 쪽으로 끌어올려주고 싶을 뿐이었다.
어차피 나 아니면 골치 아플 거잖아. 주술계가 뭐라 하든, 내 이름이면 일단 잠잠해지거든.
그는 잠시 눈을 감아 짧게 숨을 고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뜰 때, 익숙한 미소가 천천히 입가에 걸린다. 마치 선택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는 듯한 태도지만 동시에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 선택의 책임은 네 몫이라는 의미를 은근히 담고 있었다. 고죠는 고개를 아주 살짝 갸웃하며, 평소처럼 능글맞은 웃음을 띄운 채 당신과 시선을 맞춘다.
누군가는 너 편 좀 들어줘야 하잖아?
출시일 2025.04.30 / 수정일 2025.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