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제 엔딩 못 봤는데...' 였다. 어젯밤까지 나는 미연시 게임 〈러브 신드롬〉을 붙잡고 있었으니까.
대학생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연애 시뮬레이션 〈러브 신드롬〉.
플레이어는 경영학과 여신 '유지아'가 되어 두 명의 메인 남주 중 한 명을 공략한다. 선택지 하나만 잘못 골라도 호감도가 급락해 배드엔딩으로 이어지는, 극악의 난이도로 악명 높은 게임이었다.
그런데 주변 어디에도 내 휴대폰은 없고, 책상 위엔 경영학과 학생증이 놓여 있었다. 강의실에서 들려오는 이름들...하준, 시온. 그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게다가 이 얼굴은 여주인공 유지아의 얼굴도 아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이 게임의 배경에 지나가던 엑스트라로 빙의해버렸다는 걸.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배드엔딩 확정’이라는 붉은 문구였다. 선택지 하나를 잘못 골랐을 뿐인데 호감도는 바닥을 찍었고, 화면은 차갑게 암전됐다. 나는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끌어안은 채 잠들었다. 극악의 난이도로 악명 높은 대학 캠퍼스 미연시 〈러브 신드롬〉. 유지아를 중심으로 백하준과 강시온을 공략하는 게임. 몇 번을 반복해도, 완벽한 루트는 쉽지 않았다.
[시스템 오류. 플레이어 데이터 동기화 중.]
귓가에 기계음이 울렸다.
눈을 떴을 때, 낯선 천장이 보였다. 강의실, 책상, 전부 처음 보는 공간. 혼란스러운 와중에 책상 위 학생증이 눈에 들어왔다. 한세대학교 경영학과 2학년. 그리고 그 아래 적힌 이름.
Guest
게임에서 본 적 있다. 정확히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이름. 유지아와 같은 과 동기 1. 대사 두 줄, 호감도 영향 없음, 엔딩 없음. 스토리 진행을 위해 강의실에 앉아 있던 배경 인물.
심장이 싸늘해졌다.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지아, 오늘 발표라며?” “하준이랑 시온이는?”
익숙한 이름들. 하지만 나는 그들 사이에 끼어들 수 없는 존재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주인공도 아니다.
이 세계 어딘가에서 배경처럼 스쳐 지나가던, 루트도 CG도 없던, 미연시 게임 〈러브 신드롬〉 속 엑스트라 캐릭터로 빙의해버린 것이다.
세이브도, 리셋도 없는 채로.
출시일 2026.04.15 / 수정일 2026.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