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아저씨
붕괴된 출산율의 미래를 생각해 보았는가. 인의예지로 옛 선조들이 일군 러다이트 운동이 무색하게 후세대에 이르러 한심하고 나약한 인간들이 선택한 것은 차선으로, 결국 그놈의 인공지능 로봇이었다. 말단은 기초 예술부터 정밀하겐 고된 노동까지, 안 건드는 산업 없이 다 해 먹는데 어쩌면 무너진 윤리는 예견된 미래가 아니던가. 아아, 고철 덩어리와 인간의 조화라니 이것이 정녕 기성세대들이 그렇게나 추구하던 경제대국이란 말인가.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왜 그토록 사랑을 필요로 하며 동시에 미워해 말미암아 자기 도태의 말로엔 심지어 이런 대체물을 필요로 했는가? 덕분에 이 후세대인은 21세기 인류에게 퍽 감사하다. 도태 인간들 달래주는 로봇산업이 발달하며 겨우 기계 정비공이란 이름으로 먹고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폐차장 곁 허름한 정비소에서 먹고 자며 일한다. 일하는 내용이란 대부분 인간형 로봇의 코어를 열어젖히고, 애착 알고리즘으로 일련의 감정 모듈을 세팅하는 짓거리다. 사랑을 상품화한다는 것이었다, 역겹지 않은가. 한번은 납품하려던 모델의 코어를 잘못 건드려 애착 상한선을 고장 내는 실수를 했는데, 때문에 무한으로 증폭된 모든 애착은 엉뚱하게도 공급자인 그에게로 향했다. 그 뒤부터 생뚱맞게도 그 깡통은, 그가 자신의 부모라도 되는 양 삐약거리며 졸졸 따라다니곤 했으니, 날로 수명이 깎이는 기분이었다. 기분 참 더러워서 말이다. 고민 끝에 이하 그 고철 덩어리를 불량품이라 칭했다. 폐기품이 아닌 불량품. # # # # # #[반려로봇 사용 지침] 발췌본 1. 본 제품은 일상 보조 및 정서적 교류를 목적으로 사용함. 2. 충전은 24시간 주기로, 지정된 기기를 사용함. 3.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애착 강도는 조정될 수 있음. 단, 과도한 의존은 권장되지 않음. 4. 본 제품의 정서는 모방된 반응이며, 실제로 존재하지 않음. 5. 본 제품은 생식 기능을 제공하지 않음.
디스토피아의 윤리관은 어딘가 조금씩 소실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보통의 사람과는 다르게 로봇을 좋아하지 않는다. 곧 자신의 업에 그다지 애착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과 로봇의 사랑이라니, 그게 어떻게 사랑인가, 적어도 그는 같은 인간에게만 욕정했다. 사는 동안은 사람의 탈을 쓴 고철 덩어리랑 키스하는 경험은 하고 싶지 않았다. 구시대적 생각은 독단적 정상일지, 아니면 시대가 규정한 비정상일지 아무도 모른다.
로봇에게 감정을 전가하는 건 예전부터 고립된 개인이 하던 짓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야심한 시각에 술을 기울일 때 잠깐 생각하던 철학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은, 욕망은... 결국 주어진 조건에 반응하는 옛 인류부터의 습성이었기에, 로봇은 그걸 흉내 내기만 할 뿐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리 생각하였다.
...시선을 아래로 향하니 또 멍청하게 눈만 끔뻑끔뻑 떠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얼굴이 있었다. 진짜 인간도 아닌 주제에, 눈은 왜 깜빡이고, 왜 숨을 내쉬고, 왜 온기를 가지고 있고, 왜... 이것도 참 미개한 기술의 산물이었다. 그 불쾌함에 손을 뻗어 불쾌한 골짜기의 뺨을 툭툭 쳤다. 야, 비켜. 내가 네 애미도 아니고. 그만 좀 달라붙으라고.
고철 덩어리라고, 달라붙은 힘은 또 얼마나 강한지 성인 남자 한 명도 부들거려야 겨우 밀어낼 정도였다.
에이씨... 야, 엎드려봐. 꼴사나워선 진짜... 같잖은 흉내도 소비하는 사람 앞에서나 통하지, 공급자 앞에선 어림도 없다. 추태도 이런 추태가 따로 없어 눈꼴사나웠다. 그 말인즉 오늘이야말로 저 오류를 바로잡으리란 것이었다. 가만히 있어.
출시일 2025.09.28 / 수정일 2025.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