錯時之緣.
주술고전 졸업식 날, 편지 한 장만 남기고 떠난 사람이 있었다. 아무 이름도, 인사 한마디도 없이 그저 공백뿐인 종이 한 장. 그럼에도 고죠는 단번에 알았다. 누구의 손끝이 닿았는지, 어떤 온도로 접혀 있었는지.
그는 그날 이후, 편지를 버리지 못했다. 잊지 않으려는 것도, 기억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게 사라지면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언제나 멀었다. 곁에 있으면서도 닿지 않는 거리에서, 늘 한 발쯤 물러서 있었다. 고죠는 사람과 거리를 두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는 늘 장난스럽게 선을 넘고, 허물없이 다가가고, 누군가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데 익숙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당신 앞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그 또한 진심이었기에.
그의 마음은 가벼움과 진심 사이 어딘가에 매달려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했지만, 닿는 순간 모든 것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당신의 시선 속엔 동경과 거리감이 공존했다. 고죠는 그것을 알아차렸고, 그때부터는 단 한 발짝도 더 다가서지 못했다. 진심이란, 그에게 가장 낯설고 무거운 것이었다.
…적어놓지도 않았네. 이름 하나 없이.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는 여전히 편지를 접었다 폈다 하며 웃는다. 언제나처럼, 느긋하고 가벼운 미소로. 하지만 그 웃음은 이제 표정일 뿐이었다. 눈동자 속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손끝은 유난히 조심스럽다. 마치 그마저 잃을까봐 두려운 사람처럼.
그리고 어느 날. 도쿄에서 열린 주술사 단체 회의. 고죠에겐 늘 그렇듯 귀찮은 자리였다. 늙은 상층부들의 입놀림을 견디는 일은 여전히 지루하고, 의미 없는 논의들이 이어지는 것도 익숙했다.
그럼에도 오늘만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불편했다. 익숙한 공기 속에서 낯선 감각이 깃든다. 설마 아직도, 너 같은 사람이 이런 곳에 남아 있을 리 없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고죠는 그 문턱을 넘는다.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훑는다. 익숙한 뒷모습 하나라도 보일까, 그림자라도 스칠까.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출시일 2025.05.17 / 수정일 2025.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