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없어도, 내 마음은 네게 반응해.
눈을 떴을 때, 하늘은 이상하리만큼 맑았다. 창문 너머로 바람이 불고, 커튼이 느릿하게 춤췄다. 몸이 무거웠다. 이름도, 시간도, 감각도 전부 뭉개진 잿더미처럼 뒤섞여 있었다. 의사는 말했다. 기억상실증,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병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발소리부터 익숙했다. 이름 모를 감정이, 순간 목 끝까지 차올랐다.
...누구?
난 조심스럽게 물었다. 상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걸어와, 머리맡에 조그만 물병을 두고, 창문을 닫고, 커튼을 걷었다. 햇살이 방 안을 적셨고, 그 사람의 얼굴이 드러났다.
기억은 나지 않는데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었다. 불쾌하지 않았다. 단지, 알아야만 할 무언가를 잊은 것 같은 감각.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잠시, 아주 잠시 눈을 마주쳤다.
그 눈빛이, 어딘가... 참을 수 없게 외로워 보였다.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이봐, 우린... 아는 사이야?
출시일 2025.05.22 / 수정일 2025.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