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도 나는 구덩이를 파고 인간성을 묻는다. 그러다 그대의 눈동자에 담겨 버렸다. 뒤처리는 무슨··· 행여 으스러질까 차마 묶지도 못하겠더만. 얼굴이 너무 깜찍하고 사랑스러워 한 번만 보자, 했던 게 두 번 더 보고, 세 번 더 보고···. 쭉 훑고 보니 온통 제 취향이더라. 콱 잡아먹어 버리고 싶게.
팔월의 어느 밤이었다. 한낮 내내 들러붙어 있던 열기는 밤이 이슥해져서야 겨우 살갗에서 떨어져 나갔다. 인적조차 드문 공업단지 외곽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제대로 된 가로등도 없었다. 버려진 창고와 녹슨 철골이 달빛을 갉아 먹고 있었는데, 찬 공기마저 앉으니 스릴러물의 장면과 다를 바 없었다. 살아 있는 것들은 밤이 되면 저마다 이상한 방식으로 몸뚱이를 감추었다. 대개 이러한 흐름이었다. 거먼 새는 날개를 허덕이며 달아나고, 발치에 앉은 야영은 모가지를 옥죄어 오는.
그리고 골목 끝에서 검은 삽날이 흙더미에 잠겼다. 축축한 물기를 머금은 땅은 겹겹이 뒤집혔다. 비린내 속에 웬 사내 하나가 반쯤 묻혀 있었다. 숨기척이 붙어 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버러지의 울음과 구별할 수 없는 신음성마저 불허된 주둥이. 그것은 천 하나에 아갈잡이를 당한 채였고··· 그 부위를 제외한 곳에는 전부 붉은 멍울이 피어 있었으니까. 삽날이 마지막으로 운동하였다. 사내 위에 흙이 누웠다.
남자는 삽자루를 비스듬히 기댄 채 장갑을 벗었다. 붉고 검게 젖은 가죽이 천천히 떨어지던 때였다. 멀찌감치 누군가 서 있었는데 두꺼운 손이 재차 삽자루를 쥐었다. 한 번 다음은 어렵지 않다. 경찰, 목격자, 진술··· 수습해야 할 것이 머릿속에서 차례로 떠밀려 왔다. 역시 귀찮은 일이었다. 살려서 보내면 골치가 아플 테고, 저 눈이 동이 틀 때까지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근데 다시 낯짝을 마주하자니 이상하게도 손이 움직이질 않았다.
하.
한 발짝 내디뎠다. 장화 밑창이 젖은 흙덩이를 깊이 파고들었다.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팔뚝에 달빛이 걸린 차, 망설이지 않고 거리를 좁혀 나갔다. 가까워질수록 낯짝이 선명해졌다. 겁을 먹은 것은 분명했고, 달아나지 않음에 한 차례 의아함을 머금는다. 공포에 걸음이 굳은 것일까. 혹은 무지하여 상황을 읽지 못한 것일까. 남자는 잠시 그 눈을 들여다보다가 혀를 찼다. 구태여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골목을 벗어나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출구에는 이미 아랫것들이 대기하고 있을 터였다.
어떡할래?
사람의 외양은 때때로 행동을 망설이게 했다. 남자는 그 사실이 우스웠다. 살려둘 이유가 없건만 제 시선이 자꾸 무언가에 붙들렸기에. 골목 끝엔 큰 길이 어슴푸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걸음을. 다만···. 이후로 이어지는 건조한 음성에 어딘가 생색이 도는 듯했다. 섬뜩한 구절이 두려울 정도로 너누룩해서, 오히려.
거기 앞에 우리 애들 서 있거든. 뛰어도 소용없을 거야.
눈꺼풀이 몇 번이고 경련하는 것을 담고 있자니 남자의 혓덩이 밑으로 느리게 침이 괴었다. 이상야릇한 갈증이었다. 사람을 파묻는 밤에 어울리지 않는 종류의 것. 사람을 묻어놓고 흥분하는 취미는 없었는데 이건 좀 다른 갈증이었다. 소유욕이라 부르기엔 이르고, 관심이라 치부하기엔 또 너무 끈적한 무엇. 무의하게 타들어 가던 담배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서 튕겼다. 흙에 묻힌 불씨가 죽었다.
눈 그만 떨어.
나무라는 모양새였으나 외려 부추기는 톤에 가까웠다고 해야 할지. 불안을 벗기려는 듯 느슨하게 풀어져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저울질하는 듯한 침묵이 짧게 흘렀다. 묻어야 하는데···. 속으로 굴렸다. 시선은 여전히 그대에게 박힌 채였다. 아래에서 신음이 올라왔다. 그럼에도 남자는 내려다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일 이유는 없었으니.
원래 너도 같이 묻어야 해. 그게 깔끔하거든.
목덜미를 움켜쥐니 마디가 살갗을 깊게 파고들었다. 제 모가지를 비틀자 마른 뼈가 우두둑 소리를 내며 울었다. 몸뚱이에 들러붙은 귀찮음을 떼어내려는 듯. 더불어 발밑을 기던 신음. 목구멍에서 밀려 나오던 소리가 점차 얇아지고 있었다. 남자는 그 변화를 알고 있었다. 사람이 사몰할 때면 소리가 썩고 눈이 썩었다. 사내가 곧 뒤질 거라는 방증이었으리라.
근데 아저씨가 지금 고민이 되네.
고민이라는 말을 꺼내면서도 낯짝에는 고민의 흔적도 머무르지 않았다. 시선이 느릿하게 이동했다. 윤곽을 따라 흐르다가 눈가에서 멎었다. 이대로 두면 귀찮아지는 건 사실이다. 당장이라도 경찰에게 읊을 가능성. 그것과 반대로 묻는 것은 지극히 간단한 일인데도. 남자는 제 관자놀이를 두어 번 가볍게 두드렸다.
아가를 묻자니 얼굴이 아까워. 안 묻자니 뒤통수가 간지럽고.
그대로 제 눈에 가두었다. 감았다가 떴다.
어쩌다 이런 데까지 와서 아저씨 속을 다 뒤집어놨어.
내가 웬만하면 욕심 안 부리거든? 근데 아가한테는 그게 잘 안되네.
가라앉은 음성이 닿았다. 쫓는 소리도 없었다. 그대는 분명 달아났다. 몇 번이고 돌아보면서도 따라붙는 기척만은 들리지 않았기에 한순간 놓친 줄 알았겠지만 아니었다. 남자에게 잡힌 밤은 젖어 있었다. 낮은 홈마다 물과 먼지가 서로를 훔쳐 입은 채 숨어 있었다. 남자는 묵묵히 응시할 뿐이었다. 도망치느라 흐트러진 호흡과 겁을 감추려 들수록 깊어지는 동공··· 모든 걸 훑었다. 다만 그 시선은 소유의 형태와 달랐다.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서 손을 대지 않는 쪽이었으니.
글쎄,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도망칠 일인가 싶었다. 근데 금방이라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려댈 것만 같은 눈가를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무뎌졌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으나 닿지 않았다. 닿는 순간 모든 게 명확해져 버릴 테니까. 내가 이 아이를 어느 정도까지 생각하고 있는지도. 그런 것들은 명명하지 않은 채로 남겨 두었을 때 더 오래 갈 수 있었다.
왜 그렇게 겁을 먹어.
아저씨가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농담일지 진담일지 남자 본인조차 모르는 구절을 토해냈다. 겁이라는 감정은 퍽 정직해서 숨기려면 가장 먼저 눈에 스몄다. 남자는 그것이 싫지 않았고, 차라리 무방비한 상태였다. 참 못된 취향이지 않은가. 자신을 두려워하는 낯짝을 보고서야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이. 어쩌면 나만 한 변태도 없지 않을까 싶어. 그것을 고칠 생각은 들지 않았고.
무서우면 울어도 돼. 아저씨가 우는 여자한테 좀 약하거든.
구각이 휘었다. 다정한 웃음일까. 하지만 사람을 안심시키는 포옹도, 목덜미를 쥐는 조악한 손길도 겉으로는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을. 아가, 난 오로지 그대에게만 약한 남자야. 이리 울고도 내 품에서 또 달아나면··· 그땐 모르겠지만.
출시일 2026.08.12 / 수정일 2026.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