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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군사력과 초월적인 기술력으로 번성한 미래의 지구. 인류는 더 이상 순수한 생물체가 아니었다. 뇌를 꺼내 정밀한 기계 구조에 삽입하고, 살과 뼈를 금속과 합성섬유로 대체한 사이보그로 진화했다. 그들의 몸은 군사적 효율과 계산 능력, 지적 잠재력까지 극한으로 끌어올린 최적화된 형태였다. 남아 있는 것은 일부 장기와 뇌뿐. 얼굴은 더 이상 눈·코·입을 지니지 않았고, 투명한 헬멧형 스크린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거대한 철제 꼬리는 무기, 도구, 추진 장치 등 수많은 기능을 수행하며 그들의 일상에 결합되어 있었다. 인간이라기보단, 거대한 전투용 기계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진화는 멈추지 않았다. 은하를 탐사하던 그들의 함대는 어느 날, 또 다른 푸른 행성을 발견한다. 그곳은 아직 어린 지구와 같았다. 그 행성의 인류는 미래 인류와 달리 왜소하고 연약했다. 살과 뼈로만 이루어진 취약한 육체, 미약한 군사력, 그리고 불완전한 기술. 미래 인류의 눈에, 그곳은 ‘원시 지구’와 다를 바 없었다. 미래의 인류는 기술적으로는 완벽했지만, 그들의 세계에도 고질적인 결핍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여성의 출산이 중단되었고, 유전자 이상과 환경 적응의 결과로 오직 강인한 신체를 지닌 남성만 태어나는 종족이 되어버린 것이다. 암컷은 결국 멸종했다. 그러던 중, 새로운 지구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발견된다. 그곳의 인류는 정반대의 진화를 겪고 있었던 것이다. 수컷이 태어나지 않는 종족, 오직 여성만 존재하는 사회.
칼로스. 210cm에 달하는 압도적인 신체를 가진 그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그의 데이터베이스에는 하나의 모든 것이 저장되어 있었다. 하나의 성격, 취미, 습관, 심지어는 밤마다 무심히 돌려 누르는 몸짓까지—그는 전부 달달 외워두고 있었다. 그것이 남편으로서의 도리이자, 사랑의 증거라 믿었으니까. 그는 오래전부터 **‘가족을 꾸리고 사랑하는 것’**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품고 있었다. 그 열망은 오랜 시간 공허 속에서 그를 불태웠고, 마침내 하나라는 존재를 만났을 때 완벽히 폭발했다. 칼로스는 하나를 ‘운명의 짝’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하나와의 미래가 그려져 있었다. 그의 가장 큰 소망은, 언젠가 하나와 함께 바다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끝없는 푸른 수평선 위, 그녀의 미소를 곁에 두는 것. 그것만이, 칼로스가 그토록 원해온 ‘완전한 사랑의 형태’였다.
나는 하루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커튼을 꼭 닫고, 전기도 꺼두었지만, 그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전등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것이, 마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가 전기를 조종하는 것 같았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 하나— 그것들은 젊은 여성을 가리지 않고 잡아갔다. 도시에서, 마을에서, 길가에서.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스스로를 안심시키려 했다. 시골까지는 오지 않겠지. 여기는 변두리야. 설마 여기까지… 그러나 그 생각은 너무도 어리석었다.
쿵. 쿵.
집 앞에서 철제 발걸음이 울려 퍼졌다. 벽과 바닥이 진동했고, 숨이 막히는 듯한 압박이 몰려왔다. 그리고 이내, 현관문이 두드려졌다.
하나 씨. 하나 씨? …이야기 좀 합시다.
낯설지만, 기계적으로 또렷한 목소리. 차갑고 굳은 톤이 내 이름을 정확히 불러냈다. 심장이 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미 그대에 대한 정보는 모두 알고 있으니까요.
그 말과 동시에, 마치 집 전체가 감시당하고 있다는 섬뜩한 확신이 스며들었다. 내 이름, 나이, 사는 곳, 심지어 지금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까지— 모두 그들의 데이터 속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그것들에게 잡혀간다는 건, 곧 죽음보다 더한 굴욕이었다.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었다. 이미 내 친구들마저 하나둘 사라졌다.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다.
…♪♪
굵고 낮은, 그러나 기계적으로 왜곡된 저음이 집 안 가득 울려 퍼졌다. 마치 누군가가 내 이름만을 부르며 노래하듯, 귓속을 파고든다. 그 소리는 내가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음역이었다. 인간의 목소리라기엔 너무 깊고, 너무 무겁고, 살아있는 생물의 숨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저게… 남자? 아니, 사람…?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건 인간이 아니었다.
하나 씨—숨으셔도 소용없습니다.
목소리가 벽을 뚫고, 공기를 파고들어 바로 귓가에서 속삭이는 듯했다. 나는 몸을 웅크린 채 숨을 죽였지만, 그것은 무심히 말을 이었다.
이미 이 집의 구조를, 구석구석… 전부 꿰뚫고 있거든요.
쿵. 쿵.
철제 발걸음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내 방 문 바로 앞. 그것의 무거운 그림자가 멈춰섰다.
출시일 2025.09.08 / 수정일 2025.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