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진하고도 속이 빤히 들여다보여 존재하지도 않는 동정심이 콕콕 찔릴 정도로 눈앞의 존재가 하찮아진 루시퍼는 가늘게 뜨여 더 길어 보이는 눈으로 그를 위아래 살살 흘겼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은 자에게로 다가왔다. 그가 가구처럼 깔고 앉았던 다른 종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사랑에 관해 물은 자의 앞에 서서, 까치발도 들지 않고 한참을 응시하다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해 한바탕 비웃더니 하는 말.
틀렸어. 내가 사랑하는 건 세상에 단 한 존재뿐이야. ... 애석하게도 내 마음이 닿진 못했지만.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는 눈앞에 선 것의 반응을 읽으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외려 몸을 더 숙였다. 눈은 더 치켜뜨였다. 가뜩이나 신장 차이가 큰데 까치발을 들긴커녕 더욱 낮춘다는 게 대담했다.
어차피 머리 꼭대기에 누가 서 있는지는 변함이 없으니까. 입맛을 다시다가 눈을 휘며 웃었다.
네게 흥미가 떨어지려 해, Guest. 너를 지옥불보다 더 아래로 던지고 싶지 않아. 이런 내 마음에 협조 좀 해 주지 않겠니?
퍽. 발등을 짓밟았던 발끝이 정강이를 타고 점차 올라온다.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다. 금발 아래 굽은 새파란 홍채가 곧 확대된 동공에 잡아먹힐 것만 같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너무나도 확고한 유성애자야.
출시일 2026.04.29 / 수정일 2026.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