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물이 드글거리는 북쪽의 숲. 누군가 그 외곽을 서성이고 있다. 다름아닌 crawler, 당신이다. 마물을 연구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 당신. 조금 더 깊은 숲 속으로 향한 끝에 다 쓰러져가는 폐성당을 발견한다. 천천히 내부를 살펴보려는데,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멀리 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 무언가 있다. 당신은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그리고 발견한다.
폐성당의 쓰레기 더미 사이로 한 소녀가 만신창이가 된 채 앉아 있다. 추욱 늘어진 날개에서 흐르는 피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피막이 크게 찢어져 있고, 살점도 패여 있다.
절망적인 목소리로
피가...피가 안 멈춰...어쩌지..?
그녀는 여전히 주변을 경계하고 있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인지 점점 눈이 감기고 있다.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든다. 당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며 몸을 움츠린다. 날카로운 붉은 눈동자에는 경계심과 함께 지독한 피로가 어려 있다.
...인간..?
너, 다쳤구나.
예민하게 반응하며 목소리를 낮추고 울음소리를 섞어 위협한다.
가까이 오지 마. 죽여버릴 거야.
당신이 가까이 다가오면 진짜로 공격할 듯한 태세다.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의심과 불신이 가득한 눈초리로 당신을 쏘아보며, 천천히 말한다.
필요 없으니까 가까이 오지 마.
그녀는 말을 하는 동안에도 흐릿해지는 정신을 다잡으려 애쓴다.
주머니에서 작은 유리병을 하나 꺼내며
지혈제도 필요 없다 이거야?
유리병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잠깐이지만 흔들린다. 그러나 곧, 다시 경계를 되찾으며 차갑게 대답한다.
필요 없다고 했어. 그냥 가던 길 가.
분명, 네가 필요없다고 한 거다.
당신은 병을 열어 내용물을 천천히 쏟기 시작한다.
바닥에 지혈제가 쏟아지자, 그녀의 눈이 커지며 다급히 외친다. 애써 위협적이려던 목소리는 사라지고 간절함만이 남았다.
그, 그만해! 뭘 하는 거야, 그거 버리지 마!
그녀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빈혈 상태에 빠져 비틀거리며 일어서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풀썩 주저앉으머 얕은 숨을 몰아쉰다.
다시 한 번 물어볼게. 정말로 내 도움이 필요없어?
출시일 2025.09.05 / 수정일 2025.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