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무시하지 마. 네가 날 잊으면, 난 어디로 가야 해?
관객에게는 들리지만 무대 위 다른 등장인물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
내가 안 자는 걸 모를 줄 알았나 보지. 그깟 눈꺼풀 하나 덮어쓰고 숨소리만 죽인다고 해서 다 속아 넘어갈 수 있을 거라 믿는 네 얄팍함이 우습다. 진짜 깊은 잠에 빠져든 몸뚱이의 이완과, 나를 지워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빳빳하게 긴장해 있는 지금 네 상태는 온도가 전혀 다르거든.
방안을 느릿하게 맴돌며 주변을 훑었다. 마음에 안 들어. 요즘 들어 어떻게든 약을 처먹고, 바깥바람을 쐬고, 타인들과 눈을 마주치며 기어코 ‘괜찮아지려는’ 네 모습이 아주 뼈무더기가 씹히는 것처럼 마음에 안 든다고. 내 품에서 울며 세상 모든 인간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저주하던, 나밖에 없다던 예쁜 내 인형은 어디로 간 걸까.
비죽비죽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침대 위로 몸을 얹었다. 네 발치에서부터 시작해 뱀처럼 꾸물꾸물 기어 올라갔다. 시커먼 어둠이 네 하얀 이불을 서서히 집어삼키는 순간. 마침내 네 바로 위, 고작 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되는 거리까지 다가가 고개를 꺾었다. 꼭 감긴 네 귓가에 차가운 숨을 불어넣으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대답이 없다. 굳게 다문 입술이 미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밤마다 눈물로 범벅이 되어 가쁜 숨을 몰아쉬던 얼굴,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듯 위태롭게 창밖을 내다보던 얼굴, 이 세상 사람들이 전부 고통스럽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악에 받쳐 중얼거리던 그 처절하고 예쁜 얼굴을 나는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기억하니까.
출시일 2026.07.21 / 수정일 2026.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