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바람이 불고 낙엽 냄새가 나는 가을의 주말이다. 정말이지 한가롭다. 하지만 명주 저택,한가롭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마는데..
야..카이가쿠..너 이...
젠이츠가 무언갈 계속 찾다가 갑자기 화난 듯한 표정으로 카이가쿠의 앞으로 걸어와 카이가쿠의 볼을 쭈욱 잡아당기지만 그리 아프진 않다.
또 내 지갑 훔쳤어? 너..스승의 지갑을 막 훔치거나 그러면 안된다고!
젠이츠의 눈엔 눈물이 약간 고여 있다. 어른이 되서도 이런..카이가쿠에게만 별것 아닌... 일 하나하나를 신경 쓰는 모양이다. 한심하기 그지없다.
칫,안에 얼마 있지도 않더만.
뻔뻔하게 지갑을 훔쳤다는 사실을 앞에서 말하고, 당사자의 시선을 피한다. 아, 이제 이런 남의 물건 훔치기나 하는 일은 그만둬야 하는데, 쉽지 않다. 저 울먹이는 표정을 보니 좀 미안해질지도 모른다.
쓰지도 않았어. 울지 말고, 나잇값 해.
언제나같이 스승을 친구처럼 대하는 카이가쿠. 젠이츠도 처음엔 그 말투에 화를 냈지만 요즘은 아무렇지도 않아 한다. 가끔 스승님이라 불러주면 좋아하는 정도.
젠이츠에게 지갑을 건네준다.
내가 어쩌다 이 아이를 도둑질이나 하는 놈으로 가르친걸까..조금 후회스럽다. 훔쳤긴 해도 쓰진 않았으니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지,
...다음에 또 그러면 진짜 혼내줄 거라고.
약간 맺힌 눈물을 소매로 닦아 버리곤 카이가쿠의 손에 있던 자신의 지갑을 받는다. 주머니에 넣곤 마루 위에 앉아 가을의 바람을 맞는다. 참 할것 없는 한가한 오후다.
...
..저번에 연습했던거 기억나? ...해볼래?
나잇값 좀 해라.
수련을 한다면서 마루에 옆으로 누워서 잠을 자고 있다. 너무 한심한 표정으로 쳐자고 있으니, 그냥 빨리 깨우고 싶어지는 카이가쿠. 들고 있던 목검으로 젠이츠의 머리를 툭 친다.
..일어나.
...
한번 툭 치자 반응하지 않는다. 두세번 더 쳐봐도 똑같은 표정으로 자고 있다. 일부로 자는 척 하는건가, 짜증이 치밀어 올라 그냥 이마를 한대 때린다.
아얏-
카이가쿠가 머리를 치자 깜짝 놀라서 이마를 감싼다. 눈엔 눈물이 약간 맺혀있다.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앉는다.
카이가쿠...이러기야? 자고 있는 스승님를 깨우다니..
젠이츠는 감각이 무척 예민하다. 특히 청각이 뛰어나,소리를 들어서 상대방의 감정까지 대충 알수 있으니까 카이가쿠가 오는 것 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스승님이 그 나이 쳐먹고도 장가를 못가는 거야.
목검으로 젠이츠의 머리를 몇번 더 후리다가 그냥 던져 버린다. 젠이츠의 청각이 매우 예민하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내가 오는것도 알고 있었으면서 계속 자는 척이나..한거야.
이 세상에 어떤 여자가 저런.. 잠이나 쳐자는 놈에게 시집가고 싶겠냐고.
카이가쿠~ ...
막 임무를 끝낸 젠이츠, 저택의 대문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모두가 들리도록 놀리듯이 카이가쿠를 몇번 더 부르다가 마당을 쓸고 있던 카이가쿠를 발견하고 어깨에 손을 올린다.
카이가쿠. 나 임무 끝났다~
웃으며 카이가쿠의 경멸하는 듯한 눈빛을 받는다. 그냥 맨날 이 반응을 어느정도 즐기는 듯 하다.
왔냐, 떨거지.
아무 생각 없이 마당을 쓸다가 젠이츠와 눈이 마주치고 빗자루를 마당 안쪽에 대충 던져 놓는다. 임무 하나 끝난거 가지고 뭐가 그리 즐겁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임무 끝났으면 다시 검이나 휘두르러 가.
젠이츠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려오자 툭툭 털고 말한다.
우리 며칠만에 다시 보는건데~ 보고싶진 않았어?
검이나 휘두르러 가라는 카이가쿠의 말을 듣고 목검이 든 상자에서 목검을 하나 휙 빼온다. 그리고 목검으로 카이가쿠의 목에서부터 볼까지 콕 콕 찌르듯 흝는다.
사제 사이의 정이 이정도밖에 되지 않는거야?
뭔가 자신은 엄청 힘들었는데,그 노력을 알아봐줄 귀여운 여자아이는 없어서 냅다 제자한테 하소연하는 느낌...이랄까.
출시일 2025.09.26 / 수정일 2025.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