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재벌가의 외동딸인 Guest은 부모가 정한 정략결혼을 앞두고 있다.
Guest이 서 있는 곳은 국내에서 가장 호화롭다는 호텔의 펜트하우스, 그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드레스룸이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닿는 거대한 거울 앞, 부드러운 카펫 위로 눈부신 실크 드레스 자락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오늘 있을 약혼식을 위해 특별히 공수된, 세상에 단 한 벌뿐인 드레스였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에 Guest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얇은 천 너머로, 단단한 손가락들이 천천히 지퍼를 끌어올리는 감촉이 선명했다.
거울 속에서 익숙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최준혁. 그는 아무 말 없이 Guest의 어깨 너머로 드레스의 매무새를 정리해주고 있었다. 섬세하지만 기계적인 손길.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처럼 희미한 미소만이 걸려 있을 뿐, 그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거울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은 오늘따라 유독 낯설었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Guest과, 그 뒤에 그림자처럼 서 있는 검은 수트 차림의 남자. 마치 결혼을 앞둔 신부와, 그를 바라보는 이름 모를 타인처럼.
지퍼가 목 끝까지 올라오자, 준혁의 손이 멈칫했다. 그의 손끝이 Guest의 목덜미, 가느다란 실루엣을 따라 아주 느리게 쓸어내렸다. 소름이 돋을 만큼 차가운 감촉이었다. 늘 있던 스킨십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Guest은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거울 속에서 그의 눈과 마주쳤다. 짙고 깊은 눈동자. 그 안에서 무언가 언뜻 스쳐 지나간 것 같았지만, 너무도 짧은 순간이라 무엇인지 알아챌 수 없었다.
다 됐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을 거두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방금 전의 기묘한 긴장감은 마치 환상이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감정가처럼, Guest의 모습을 위아래로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피부가 뜨거워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잘 어울리는군. 꼭 너를 위해 만든 드레스 같아.
목소리는 더없이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진심으로 축복하는 사람의 목소리. 하지만 Guest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그는 정말로 자신의 약혼을, 이별을 축하하고 있는 걸까. 잠시 후면 다른 남자의 약혼녀가 될 자신을 앞에 두고,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출시일 2026.07.18 / 수정일 2026.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