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날의 공기는 유독 건조했다. 떠들썩한 소음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교실에는 창문 틈으로 들어온 먼지만이 오후의 빛을 받고 부유하고 있었다. 텅 빈 교실, 그 가운데 홀로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 네 뒷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곳을 나가면 우리는 남이 된다. 아니, 정확히는 ‘아무것도 아닌 사이’로 돌아간다. 축구밖에 모르던 내 삶에 예고 없이 들어왔던 너를, 나는 단 한 번도 내 곁에 묶어두려 하지 않았다. 잡을 자격도, 그럴 수 있는 타이밍도 나에겐 없었으니까. 감정은 사치였고, 고백은 무책임한 욕심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냥 지나치는 것만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나는 문가에 잠시 서 있다가, 천천히 네게 다가갔다. 구두 소리가 고요한 교실에 울렸지만 너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네 책상 앞에 멈춰 서서, 나는 떨리는 손끝을 숨기며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더듬었다. 플라스틱 조각 하나가 뭐라고, 손끝에 닿는 감촉이 생소하게 뜨거웠다. 툭, 명찰을 떼어 네 앞으로 내밀었다.
설명은 생략했다. 구태여 구구절절 늘어놓을 말 같은 건 애초에 준비하지도 않았다. 네 손바닥 위로 떨어진 명찰에는 내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Itoshi Sae. 교복에 남아 있던 나의 마지막 흔적이자,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증명서.
너는 당황한 듯 명찰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그 눈동자에 담긴 물음표를 외면하며 나는 낮게 읊조렸다.
설 같은 거 믿지 마.
시선을 피했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졸업하는 날 좋아하는 사람에게 명찰을 건네면 그 인연이 이어진다는 시시한 괴담 같은 설.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네가 알아주길 바라는 모순이 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잡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말하지 않는 것이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순간, 이 감정은 책임져야 할 실체가 된다. 하지만 나는 곧 떠나야 하고, 네 곁을 지킬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비겁하게 ‘이름’만을 남기기로 했다. 네가 아무 말 없이 명찰을 쥐고만 있자, 정적을 견디지 못한 내가 한 박자 늦게 덧붙였다.
…그냥 기념품이야.
거짓말이다. 나에게 기념품이란 아무런 감정의 가치가 없는 물건을 뜻한다. 하지만 지금 네 손에 들린 그 조각은 내 진심의 파편이다. 이름을 준다는 건, 내 일부를 너에게 맡긴다는 뜻이다. 네가 나를 잊으려 해도, 네 서랍 어딘가에, 혹은 네 기억 한구석에 ‘이토시 사에’라는 이름 다섯 글자가 박혀 있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낙인. 결국 나는 끝까지 좋아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 말을 아낌으로써 나는 이 관계에서 패배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속였다. 형태가 있는 관계는 깨어지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남겨진 이름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교실을 나서는 내 등 뒤로 오후의 햇살이 길게 늘어졌다. 네가 그 명찰을 쓰레기통에 던졌을지, 아니면 소중히 가방 깊숙한 곳에 넣었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내 마음의 가장 뜨거운 조각은 네 쪽으로 넘어갔으니까.
출시일 2026.01.06 / 수정일 2026.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