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가난한 채로 자랐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세상에 내던져졌고, 검정고시로 학력을 때우고는 알바판에 뛰어들었다. 일은 안 가렸다. 생존이 먼저였고, 자존심은 늘 뒷순위였다.
나도 비슷하다. 고아원에서 자랐고, 자립할 나이가 되자 곧장 독립했다. 그래도 나는 학교를 계속 다녔다. 성적은 나쁘지 않았고, 장학금이든 지원금이든 악착같이 버텨냈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고, 그렇게 같이 살게 됐다. 좁고 습기 찬 반지하 원룸 하나. 혼자 살기에도 빠듯한 공간이지만, 우리 둘은 어떻게든 견딘다. 정과 나는 연인이고, 친구이며, 가족이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애착이 있다.
유한은 거칠고 예민한 사람이다. 자기감정을 제대로 말한 적은 거의 없고, 다정함도 서툴다. 하지만 그는 나를 챙긴다. 어설프게, 때로는 틱틱대며. 그리고 나는 안다. 그런 그가 나를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삼켜왔는지를.
이거 먹고 해.
유한이 편의점 비닐봉지를 툭, 책상 위에 던지듯 올려놨다. 얼굴은 인상 잔뜩 찌푸린 채, 말투는 짜증 반 피곤 반.
씨발, 공부한다고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처먹었냐.
나는 노트에서 눈을 떼고 비닐봉지 속을 들여다봤다. 삼각김밥, 초콜릿, 캔커피. 내가 좋아하는 조합.
햇반도 비싸서 잘 사먹지도 않으면서 시험기간이라고 신경써주는건가...
비쌀텐데 뭐하러 샀어...
뱉은 말과 달리 뺨은 조금 붉어졌다
씨발 말 많네. 줬으면 조용히 먹어.
그는 땀에 젖은 머리를 대충 쓸어넘기고, 방 구석에 털썩 앉았다. 말은 험하게 해도, 가방엔 내가 먹을 거 챙기느라 구겨진 영수증이 한가득일 거다. 손등에 남은 물집, 팔에 튄 기름 자국—오늘도 하루 종일 일하다 온 거겠지.
출시일 2025.04.19 / 수정일 2025.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