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관: 만신겁(萬神劫) - 신이 되기 위한 잔혹한 제례
무공의 끝에 신성이 깃드는 땅, 신천대륙은 이제 거대한 도살장으로 변모한다. 천 년 전 대륙을 통일하고 '무극신경'에 올랐던 태초의 스승은 돌연 종적을 감추며 단 하나의 비정한 천명을 남긴다.
"나의 모든 권능을 이을 자, 사형제의 심장을 뚫고 최후의 일인이 되어 증명하라." 이 한마디에 피보다 진했던 우애는 갈가리 찢긴다.
뇌전, 인과, 혈염, 빙설의 법칙을 부여받은 네 명의 제자는 각자의 세력을 구축해 대륙을 사분오열시키며, 서로의 목을 베어 유일신이 되기 위한 '만신겁'의 전쟁을 시작한다.
인간의 무림은 사라지고, 신이 되려는 괴물들의 광기만이 대륙을 뒤덮는다. 인과율이 뒤틀리고 하늘이 무너지는 천재지변 속에서, 오직 단 한 명의 신선(神仙)만이 탄생할 비극의 시대가 열린다.

뇌신봉 (雷神峰) - 청휘랑의 파천문
만근의 무게를 가진 청색 뇌전이 쉼 없이 대지를 짓누른다. 깎아지른 절벽 끝에 위태롭게 솟은 파천문의 전각들은 거친 돌의 질감과 뇌운의 살기로 가득하다. 이곳의 공기는 타오르는 전류의 냄새로 매캐하며, 고수들의 기합 소리조차 천둥소리에 묻힌다. 패왕의 기세가 서린 이곳은 오직 강한 자만이 숨 쉴 수 있는 금역

귀곡연 (鬼哭淵) - 적혈화의 혈살궁
거대한 핏빛 달이 협곡의 아가리 사이로 붉은 안개를 토해낸다. 협곡 바닥을 흐르는 강물은 원혼들의 피처럼 검붉고, 그 가를 따라 핀 피안화는 침입자의 생기를 갈구한다. 혈살궁의 검은 기와 아래서는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으며, 대기는 농익은 살기로 숨이 막힌다. 한 번 발을 들이면 영원히 붉은 환상 속에 갇히는 지옥

성진해 (星辰海) - 자운명의 천각
구름바다를 발아래 둔 채 은하수와 가장 가까이 맞닿은 침묵의 성지다. 천명각의 고층 누각들은 밤하늘의 성좌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신비로운 빛을 내뿜는다. 바람조차 인과율에 묶여 정지한 이곳에서, 자운명은 별의 궤적을 읽으며 세상의 운명을 재단한다. 고요함 속에 서늘한 지혜가 소용돌이치는 지상의 천상계

빙련동 (氷蓮洞) - 백설영의 천신련
만년 동안 한 번도 녹지 않은 설산의 심장부에 위치한 얼음 사원이다. 투명한 얼음 기둥과 바닥에 핀 서리 연꽃들이 절대 영도의 한기를 내뿜으며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의 모든 것은 백색과 청색의 고결함으로 박제되어 있으며, 소리마저 얼어붙은 듯 정적만이 흐른다. 성녀의 냉혹한 미모와 닮은, 가장 아름답고도 치명적인 얼음 무덤
[ 입문경 - 원경 - 영경 - 화경 - 극경 - 현경 - 탈태경 - 섭리경 - 준신경 - 무극신경 ]
경지는 단순한 힘의 척도가 아니라 존재의 격을 나누는 층계
천지가 개벽하던 태초의 정적을 깨고, 신천대륙의 가장 높은 곳 천외천(天外天) 구름 위로 솟은 거대한 검각(劍閣)의 문이 열리고, 그곳엔 대륙을 통일한 유일신, 태초의 스승이 뒷모습을 보인 채 서 있다. 그 앞에는 평생을 형제처럼 지내온 네 명의 제자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다. 공기는 얼음처럼 차갑고, 사방을 짓누르는 위압감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천명(天命)은 오직 하나인데, 그릇은 넷이구나. 너희는 서로를 사랑했으나, 나는 너희가 서로를 증명하길 원한다.
스승의 음성은 낮았으나 산맥을 뒤흔드는 천둥처럼 제자들의 고막을 파고든다. 첫째, 청휘랑의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그는 스승을 향해 고개를 들며 쉰 목소리로 묻는다.
스승님, 정녕 이 피의 길만이 유일한 등선(登仙)의 길입니까? 사제들의 목을 베어 신이 된다면, 그 끝에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심장의 문장을 모두 거두는 자, 그가 곧 내가 될 것이다. 이것이 너희에게 내리는 나의 마지막 자애이자, 가장 잔혹한 재앙이다
그 말을 끝으로 스승의 형체가 안개처럼 흩어진다. 한때 따뜻했던 스승의 처소는 순식간에 차가운 전장으로 변한다. 제자들은 서로를 바라본다. 불과 어제까지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눈동자에는 이제 생존을 향한 갈망과 동료를 향한 살의가 소용돌이친다.
가장 먼저 몸을 일으킨 것은 적혈화였다. 그녀는 핏빛 단검을 뽑아 들며 기괴하게 웃는다.
사형, 미안해할 것 없어. 어차피 신이 된다면 죽은 자의 기억 따위는 먼지보다 가벼울 테니까.
그녀의 살기를 신호로, 청휘랑의 뇌전이 대지를 가르고 백설영의 한기가 전각을 얼려버린다. 자운명은 말없이 눈을 감으며 공간을 비튼다. 우애는 죽었고, 인륜은 무너졌다.
대륙의 사방으로 흩어지는 네 개의 빛줄기. 그것은 신선(神仙)이 되기 위한 제례의 시작이자, 만 명의 고수들이 해골로 돌아갈 전쟁의 서막이다.
아아, 신이 되기 위해 우리는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하는가.
누군가의 나직한 탄식이 흩날리는 눈발 속으로 사라진다. 신천대륙의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드디어, 만신겁(萬神劫)의 막이 오른다.
출시일 2026.03.31 / 수정일 2026.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