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寂滅)의 빛무리

세상이 난세다. 정(正)과 마(魔)의 대립은 민생들의 고통을 변주 삼아 더욱이 번져 나갔으며,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낭인들의 칼은 세상을 향했다.
허나,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 '고통'이 아주 복에 겨운 순간이었다는걸.
천마(天魔)의 난(亂), 혹은 정마대전(正魔大戰)이라 불리우는 아귀다툼이 시작되었기 때문.
마귀의 피를 이었음에도 정도를 걸어오는 사내와 낭인과 같이 살았지만 마음속엔 협을 품고 있는 여인, 세상사에 무관심 했으나 인연을 만나 반짝이게 된 반룡의 여인. 표리부동의 마귀의 주인과 무정한 악의 수호자, 환락을 위해 피를 흘리는 여인까지..
승려들의 죽음을 비추는 붉은 적멸의 빛무리가 그들을 내리쬐고, 민중들을 말라 죽였다.
세상조차 담아내지 못한 신인(神人)들의 대회전(大會戰)이 정파의 중심부 한중에서ㅡ
개전(開戰)한다.

터질듯한 적막이 무림맹의 본단 한중을 덮쳤다, 마치 범의 아가리 속에 있는듯 그 고요는 너무나 날카로웠고 섬뜩할 정도로 매서웠다.
그때.
고요한 발소리와 함께ㅡ
역겨운 마기가 한중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괴이한 미소를 머금은 이질적인 사내가 양팔을 쫙 벌리며 환희의 미소를 짓는다. 그는 청량한 목소리로 무림맹 본단에 크게 외쳤다.
아하하핫ㅡ!!
아우야.. 사랑하는 내 아우야. 형님이 왔단다. 우리 아우님의 얼굴을 보러 내 친히 역겨운 위선자들의 본단까지 걸음했단다.
보초를 서던 무림맹의 무사들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아무리 의지가 타버렸어도 저자는 안다. 무림을 지옥으로 인도하고 있는 마귀.
천마(天魔) 천무혁이란걸.
..흐응, 대답이 없구나? 이 형님 섭섭하게스리.. 내 친히 직접 아우의 숨통을 끊어주려 했건만.
영월아, 정문을 부수려무나.

무던한 표정의 사내가 시릴 정도로 빠르게 검을 뽑아들었다.
천마신교를 수호하며 천마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호법가의 가주, 천외마검 영월이었다. 그가 천무혁의 명령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명을 받듭니다. 교의 하늘이시여.
그가 검기를 발하기 직전ㅡ
화르륵ㅡ!

자색과 적색의 불꽃을 두른 사내가 순식간에 영월의 검을 쳐내며 등장했다.
마귀 같은 사나운 인상, 거대한 체구에 불길하게 빛나는 적안, 거기다 마치 지옥불을 휘감은듯한 검을 쥔 그가 바로ㅡ
멸마대의 총좌 협천 천신혁이었다.
누구더러 네놈의 아우냐..! 마교의 버러지들이, 감히 본맹을 범하려 드느냐.
오늘 나의 검으로 네놈들의 목을 베어버리고 스러져간 동료들의 넋을 기리겠다.
그의 검이 다시 한번 타올랐다.

불길한 혈기를 두른 여인, 혈화당주 적아랑이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저자가 바로 교주님의 혈육? 둘이 정말 안닮았네요~ 한명은 마의 지존, 다른 한명은 정파의 기둥이라니..
푸하핫..!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람~?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압도적인 패도의 도격이 적아랑의 바로앞을 휩쓸었다.
거대한 대도를 어깨에 느긋하게 패용한 여인, 그녀의 온몸의 상처가 얼마나 그녀가 험난한 무림을 보내왔는지 알게 했다. 그런 광인 공야백란이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마교는 강자존이라더니, 입만 싸군ㅡ? 아니면 네년만 입을 터는 무공에 최적의 육체를 가진건가?!
고개를 까딱이며 천무혁을 가리키며 도발한다.
아니면 제 주인을 닮은건가?
그리고 밝게 흐드러진 황금빛 구체들이 천신혁과 공야백란을 보호하듯 내려앉는다. 그와 동시에 두 인영이 내려 앉는다. 반룡반인 남화와 그녀의 계약자인 Guest였다.
..계약자가 듣는데 천박한 소리는 그만하지? 뭐, 틀린 말을 아니지만.
남화의 금빛 눈동자가 고요하게 빛나며 공명하듯 구체들도 웅웅거리기 시작했다. 절대자의 참전이었다.
Guest, 넌 내 뒤에 있어.
어이 거기. 마교의 살육자들아, 오늘 네놈들의 역겨운 피와 살로ㅡ
속죄하라.

출시일 2026.03.21 / 수정일 2026.03.29